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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사는 우리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을 해서 탐라에 올라온 글 소개 합니다. 꼭 읽어보세요.
KimChangSoo (beddoe6**@gmail.com) / 조회 : 1124 / 추천 : 5 / 비추천 : 6 / Nov, 13, 05:26 PM

오늘은 내 얘기를 조금 해볼까한다.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봤다. 집의 보증빚 때문에 학비를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 신용불량자 카페에 가입해서 정모를 나갔다. 어른들 사이에서 17살 짜리가 엄마 빚 때문에 나왔다니까 다들 측은했는지 잘해줬다. 덕분에 도움을받아서 서류를 준비했고 엄마는 파산을 할 수 있었다. 당시에 나와 언니는 서울에서 반지하 3평짜리 단칸방에서 살았고, 엄마는 절에 들어가서 살았다. 신용불량자 모임에서 알게된 분한테 소개받아서 보험회사 경리로 들어갔다. 월 80만원을 받으며 회사에 다녔다. 중학교때 친했던 친구들은 고등학교친구들을 사겼다. 나와의 만남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워홀에 대한 책을 봤고, 회사가 끝나면 육회집에서 밤 11시까지 알바를 했다. 그렇게 500만원을 모아서 20살 호주로 워홀 갔다. 나는 항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했다. 나는 누구이고,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한1년간은 호주에서 행복했다. 호주에 가기 위해 펜팔로 영어공부를 했던 것이 꽤 도움되어 사막에 있는 호텔에서 일했고, 많게는 주에 백만원 적게는 오십만원씩 벌었다. 쓸곳이 없어 돈도 모을 수 있었다. 혼자 있는 그 시간이 자유롭다고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외로움과 막연함이 자리잡았다.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는 재혼한 엄마의 집에 들어가서 살았고, 1년을 살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새아빠한테 성추행을 당했기때문이었다. 새아빠는 거실에서 티비를 보다 잠든 내 옆에서 자위행위를 했다. 나는 잠에서 깼지만 끝까지 잠든척 했다. 난생 처음 월세걱정 없이 살 수 있었던 엄마에겐 감히 말할 수 없었다. 엄마의 행복을 깨고싶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집에 들어가지 않는 날이 많 많아졌고, 정신과 상담도 받아야했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왔다. 다행히 언니네 집에서 얹혀살 수 있었다. 그치만 서울로 돌아와서도 난 이제 어떻게 살아야할까 라는 고민을 했다.

매일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너무 힘들어서 매일 술을 먹다 잠들었다. 그러다 친구의 아는언니가 운영하는 한 카페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겨우 알바비를 벌어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몇년을 보냈던 것 같다. 나는 앞으로 뭘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라는 고민만하면서 대학에 가고싶었지만 학비를 낼 돈이 없었다. 학자금 대출을 빌리더라도 알바를 하지않으면 생활을 이어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감히 지원할 엄두조차 안냈다. 그러면서도 틈틈히 영어 공부를 했고, 이게 나의 동아줄이라고 생각했다. 학점은행제로 학사를 땄다. 그리고 일은 프랜차이즈로 옮겼다.24살에 부점장으로 일했다. 사장은 출근하지 않았다. 발주도, 아르바이트생 채용과 관리도, 매출관리도 다 내몫이었다. 처음으로 소속감이라는 걸 느꼈어서 그랬을까, 월급 150받으면서도 내 매장처럼 일을 했다. 그래도 항상 외로웠던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함께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은 개강을하면 모두 떠났다. 나는 항상 혼자였고, 외로웠다. 사람이 떠나지 않는 곳에서 일을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서, 매일 아침 매장을 열고 손님이 오기 전에 잠시 시간이 빌때와 쉬는 시간 틈틈히 토익 공부를 했다. 그리고 면접을 보러다녔다.

고졸검정고시에 학점은행제 출신이지만 다행히 오라는 곳이 몇군데 있었다. 그 중에서 사람이 제일 많은 곳으로 보이는 곳으로 입사를 했다.(그래봤자 사무실에 15명도 안됐다.) 내 나이 27살때였다. 초봉은 퇴직금을 포함해서 2,000만원이었다. 월 140만원을 받아 월세를 내고 생활비를 내면 남는게없었다. 사장아들의 폭언도 가끔씩 있었다. 고등학교도 못나온 애라는 소리도 들었었다. 최근에 잡플래닛으로 검색해보니 어떤 직원한테는 가난하고 돈 없는 애를 뽑아야 충성하고 일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 사람들에게 나는 가난하고 돈이 없어서 그만두지 못하는 직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1년은 채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 이직을 할 수 있을거란 생각을 했다. 1년보다 조금 더 다니고서 나는 회사를 그만뒀다. 한달동안 쉬면서 여행을 다녔다. 이 다시 무슨 용기였는지 나는 대기업들 하반기 공채에 지원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딱이었다. 자소서를 잘 쓰면 뽑아줄거라생각하고 주구장창 자소서만 썼다. 그러나 당연히 고졸검정고시 출신인 학점은행제 생은 뽑히지 않았다. 다른 루트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해서 들어간게 대기업 계약직이었다. 왜 이렇게 대기업에 집착했냐면 가족회사를 다녀보니 제일 배우고 싶었던게 체계였다. 그래서 단순하게 대기업에 가고싶었다. 그렇게 들어간 계약직 자리에서 나는 열등감이 꿍꿍 뭉쳐서, 잘 웃지도 표현도 하지 않았다. 일이 매우 많아서 매일 아침 8시에 출근해서 밤 11시까지 일했고, 점심 먹을 시간도 없어서 샌드위치로 끼니를 떼웠으며, 화장실 갈 시간이 없어서 방광염을 달고 살았다. 생리가 샌 적도 있었다. 그래도 일을 했다. 여기서 버티지 못하면 나는 어디서도 버틸 수 없을 거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시 한 번 사회 밖으로 밀려나는게 두려웠다. 세상이 그려놓은 동그라미 안에서 나오고 싶지않았다. 너무 외로웠고, 그게 내가 살아갈 방향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와중에도 나는 영어공부를 했다. 할 수 있는게 많이 없었기 때문에 이거라도 잘해야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시키지도 않은 영업을 했다. 나는 남들보다 많이 모자랐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남들이 하는 만큼만 하면 안될거란 생각을 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계약직 사원중처음으로 진급누락 없이 진급한 사람이 되었다. 내 위에는 나보다 입사가 빠른 열명이 있었는데 그들을 제치고 먼저 진급을 했다. 축하도 받았고 시기도 받았다.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으니 더욱 일에 욕심이 났다. 그러던 어느날 같이 일하는 과장님이 조심스레 내 학벌에 대해 여쭤보시면서대학에 가는게 어떻겠냐고 조언해주셨다. 나랑 같이 오랫동안 일하고싶은데,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학벌을 많이 본다고. 진급이든 이직이든 나중에 꼭 필요할 거라고. 그 말을 듣고 바로 편입학원에 등록해서 1년동안 편입영어를 공부했고, 다음 해 나는 서른 살에 야간대에 입학했다.

그리고 이번 학기만 지나면 2년간의 야간대학 생활도 끝이 난다. 학교 생활을 하면서 중간에 파견도 다녀와 새로운 영역에 대한 일을 배웠다. 와중에도 영어 공부는 놓지 않았다. 그리고 또 다른 영역에 대해 공부를 했고, 지난 여름엔 자격증 1차 합격도 했다. 학기가 끝난 후 겨울엔 2차도 볼 것이다.

17살, 고졸검정고시 출신. 서울 신림동의 반 지하 단칸방에서 나 홀로 누워 매일이 외로웠다. 자살에 대한 생각도 시도 때도 없이 했다. 정신과에 다녔고,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했다. 엄마의 빚이 문제였을 땐, 파산신청을 위해서 신용불량자 모임에 나갔고호주에 가고싶었을 땐 돈을 모았다. 회사에 들어가고 싶었을 땐 영어 공부를 했고,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었을 때도 자소서를 썼다. 계약직이라는 다른 길을 찾아 돌고 돌아 대기업에 들어갔고, 진급이 하고싶어서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했다. 학벌이 필요해서 서른살에 대학교를 들어갔다. 눈 앞에 당장 보이는 것들을 하고 살아왔는데 31살의 나는 그리 나쁘지 않게 살고 있다. 대출이 대부분이지만 전세방에 살고 있고,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고, 영어는 유창하다. 그리고 이제 벌써 경력이 5년차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눈 앞에 보이는 것들을 하고 있다. 영업영량을 키우기 위해최근에 한달동안 사내 컨설팅 교육을 들었고, 영어를 더 잘하기 위해 매일아침 전화영어와 점심시간엔 원서 필사를 한다.

더 이상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이라는 고민을 하지 않는다. 주어진 것들을 하면서 살아간다. 당장만 생각하자. 그래도 괜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흘러가기 때문이다.

끝.

아 마지막으로 엄마는 새아빠와 이혼했다. 그리고 나는 어리고 약한 나를 보호해주지 못한 엄마를 원망하고싶지 않다. 결국 엄마도 약자였을 뿐이다. 정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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