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별로 할 일이 없는 나는 독서로 소일한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지만 그 중에서도 문학 작품을 애독한다. 그런데 신작을 읽는 것 보다 오래전에 읽었던 작품들을 다시 읽는 즐거움이 더 크다. 내가 다시 읽는 작품들은 보편적 관심사를 주제로 하여 표현이 원숙하고 탁월한 예술적 가치가 있는 명작들이다.언스플래쉬예전에 위대한 문학 작품들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스토리의 전개에만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그 안에 깃든 문학적 깊이를 다 헤아리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 같다. 그러나 연륜이 쌓인 지금 다시 읽으니 예전에는 대...
금리 격차가 만들어내는북미경제의 새로운 균형과 주택시장 압력2025년 들어 북미는 하나의 경제권임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캐나다의 통화정책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강화와 무역 불확실성 확대 이후 두 나라의 경제 환경이 달라지면서, 금리 결정의 차이는 더욱 뚜렷해졌다.지난 10일 발표된 양국의 기준금리 조정은 이러한 구조적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캐나다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2.25%로 동결하며 최근 이어진 인하 흐름을 잠시 멈추었다. 캐나다는 외부 충격에 취약한 작은 개방경제로, 통화정책의 최...
누군가 묻는다. 일기와 수필의 차이점은 무엇이냐고. 누군가 대답한다. 일기는 나만 간직하고, 나만 읽을 수 있어 화장기 없는 민낯이거나 발가벗은 나체이어도 괜찮다. 하지만 수필은 남 앞에 서는 것이기에 나체의 일기에 수영복 정도 입혀 놓은 것이라고 했다.Adobe Stock어머니 양수에서 맨몸으로 살다, 세상에 태어나 강보에 싸이고, 배냇저고리에서 수의까지, 우리는 사는 동안 수많은 옷을 입는다. 내가 살면서 입었던 옷 중 제일 불편했던 것이 정장 차림이었다. 양복은 항상 나에게 그에 맞는 격식 치레를 요구하고, 나는 격식 있는 장...
지난 11월 23일, 아나운서 출신인 변웅전(邊雄田) 전 국회의원이 향년 85세로 세상을 떠났다.나와는 직장 선후배로 만나 함께 근무했기에 그의 죽음은 남다르다. 1991년즈음, 나는 MBC에서 출판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당시 변웅전 아나운서 국장으로부터 한번 보자고 연락이 왔다. 내가 이번에 자서전을 내려고 해요. 혹시, 좀 황현수씨가 도와줄 수 있을까 싶어서요 한다. 그때 방송에서 보던 그 깔끔하고 매끈한 외모와는 달리 소박하고 털털한 말투가 첫인상으로 남는다.변웅전은 1970~80년대 방송계를 주름잡았던 전설적인 어...
사진 출처 권천학 작가*뜬 마음: 헛되거나 들뜬 마음*뜬 세상: 덧없는 세상만파식적(萬波息笛)은 2022년에 쓴 시조 작품이다.발표 후 얼마 되지 않아서 한국문학 신문(2023년 4월 12일)의 현대시조의 맛과 멋란에 이광녕 교수의 시조 평으로 거론되면서 명시조로 인정되었고, 한국시조문학(2023년 여름호)에 명시조로 수록되고, 이어서 한강문학(23년 가을호)을 비롯한 여러 지면에 명시조로 회자(膾炙)되었다. 2025년10월에는 AI기반의 멜로디로 작곡이 되어 시조노래로 선을 보이기도 했다. https://youtu.be/PXN9R...
오랫동안 그리던 친구 부부를 마중 나와 기다리고 있다. 평일인데도 공항은 붐빈다. 떠나고 돌아오는 곳, 누군가를 맞이하고 보내는 곳. 공항 대합실은 만남의 기쁨과 이별의 아픔이, 떠남의 설렘과 귀향의 안도가 교차하는 곳이다. 내가 떠나는 것도 아닌데 항공노선의 목적지 이름만 봐도 심장이 쿵쿵거린다. 전광판에 있는 지명을 보며 예전에 여행했던 곳을 마음으로 거닐거나, 텔레비전에서 본 기억이 있는 영상을 떠올리다 보면 뜻밖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Adobe Stock이런저런 일로 여행하기 어려워 공항에 나온 지도 오래됐는데, 고국의 ...
450여 년 전, 중국 명나라 시대 당시의 기존 질서를 비판한 양명학의 좌파라 할 수 있는 탁오, 이지(1527-1602)는 76년의 생애 중 관직을 버리고 학문에 집념한 50대부터 수많은 이론을 내놓게 된다. 그에 의하면 공자는 자신만이 옳다고 말한 적이 없다 한다. 단지 맹자와 주자가 한통속이 되어 공자만 배우라고 강요하는 바람에 죽은 책을 전파하는 비극적 결과를 낳았다고 하였다. 그는 유가지만 도가와 불교에 심취하였고 마테오 리치의 서구 사상을 습득한 시대의 반항아였다. 그도 오십 이전에는 관직에 머물어 있어야만 하였고 관직에...
아무래도 짚고 넘어갑시다.연말을 앞두고 한인사회서는 음악회가 줄줄이 대기중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한 번쯤 매너를 돌아보는 것이 안전하다. 매너가 나쁠 때 자칫하면 2등 문화국 출신으로 낙인 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청중매너 좋기로는 독일인과 일본인들이 유명하다. 박수치는 문제: 대다수 청중이 박수칠 때 따라서 한다. 안전한 방법이다. 교향곡의 경우 악장이 모두 끝났을 때; 지휘자가 손을 내리고 청중을 향해 돌아섰을 때; 메시아 합창 공연이라면 절대로 한 곡이 끝났을 때마다 박수 보내지 않는다. 3개 파트 중 1부 전체가 끝나는 것이...
요즘 AI(인공지능)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테슬라>의 엘론 머스크, <오픈 AI>의 샘 알트만, <엔비디아>의 젠슨 황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젠슨 황은 한국에서 단연 존재감을 보여 주었다. 지난 10월, 한국 경주 APEC에서 글로벌 리더로서 기조연설을 했고, 각국 정상들과 개별 미팅을 주도하였다. 그뿐 만 아니라 삼성, 현대 총수들과 <깐부 치킨>에서 생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며 그가 이 시대의 AI 리더 임을 널리 알린다.젠슨 황(Jensen Huang)은 중국 저장...
만두를 빚으려고 준비한 속이 큰 양푼에 가득 담겨 있었다.이 많은 걸 언제 다 하지?온 가족이 둘러앉아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동안, 나는 찬장 속 접시와 사발, 종지를 꺼내어 만두 찍는 도구를 만들기에 열중했다.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마침내 일종의 만두 틀을 완성했다. 모양은 일정하게 잘 나왔지만, 문제는 손으로 빚는 것보다 빠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설거지만 늘린다며 어머니와 아내의 타박을 들었고, 그 엉성한 만두 틀은 이후 명절마다 단골 웃음거리가 되었다.Adobe Stock나는 무언가를 시작할 때 늘 효율적인 방법을 먼저 찾는 ...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파스칼)만약 1492년에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100년 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한다면 전혀 관계가 없는 두 가지 사실을 연결시킨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서광철(토론토)하지만 역사는 우연한 사건의 점철이라 할 수 있다. 클레오파트라의 코의 비유는 역사가 우연한 사건에 의해서 지배될 수 있다는 우연사관의 대표적인 예다.콜럼버스는 1492년 8월3일 스페인을 떠나 그해 10월12일 지금의 바하마 제도에 도착한다.그는 기존의 개...
한국에 체류하던 아내와 나는 친구 부부와 함께 늦가을에 당일치기 문경새재 여행을 다녀왔다.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이 스쳐 지나갔을 그 유명한 고갯길을 우리가 밟아 본 것이다.문경새재. 한국관광공사 사진우리가 판교역에서 탑승한 KTX열차는 한 시간 반을 달려 연풍역에 닿았다. 창밖 풍경은 이미 가을빛으로 완숙했다. 들판의 벼는 고개를 숙였고, 멀리 겹겹이 포개진 산들은 옅은 안개 속에서 수묵화처럼 번져 있었다. 연풍역을 나서자 신선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새도 날아서 넘기 힘들다는 문경새재는 경상북도 문경시...
서광철(토론토)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의 구호인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은 1942년 영국의 베버리지(W.Beveridge) 보고서에서 유래한 구호로, 탄생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국가가 국민의 삶 전반을 책임지는 완벽한 사회복지를 의미한다.그 후, 이 구호는 근대사회 보장제도의 상징이 되었으며 영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회복지 정책에 모델(model)로서 큰 영향을 주게 된다.나는 1974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민을 온 후, 온주 의료보험인 OHIP(Ontario Health Insurance)을 신청하면서 꿈에나 그려...
어느 늦가을 날 이었다. 분주했던 하루를 희석시키는 잠결에 기대고 있을 무렵, 천장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숨을 죽였다. 같이 누우려던 온 몸의 세포가 일제히 일어나 한 곳으로 향했다.Adobe Stock어릴 때 살던 집, 더그매는 쥐들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달리기 시합을 하는지, 잔치를 벌이는지 밤이면 조용할 날이 없었다. 아버지는 고양이 묘(描)자를 붓으로 써서 천장에 붙여 놓았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도 있고, 길 고양이 들도 들락거렸지만, 역량 발휘를 못하니 생각해 낸 대안이었던 것 같다. 살아있는 고양이도 힘을 못쓰는 ...
고국에 다녀왔다고 하니, 맛있는 거 많이 먹었어요?하는 질문을 많이 들었다. 고국을 찾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민 오기 전에 먹었던 진짜 깊은 맛이 그리워서이지 싶다.토론토에서는 해산물이 귀해, 고국에 가자마자 찾은 곳이 횟집이었다. 고급회를 파는 일식집이 아니고 수족관에 있는 생선을 바로잡아 막 회를 떠 주는 곳 말이다. 회와 함께 나오는 상추, 깻잎, 백김치, 김, 미역, 꼬시래기, 막장 등 쌈을 싸 먹게 곁들여 주는 해초류는 보기만 해도 입맛을 돋운다. 서비스로 나오는 새우, 고구마, 오징어 등의 튀김. 김치전과 꽁치 구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