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 문학서재 위험한 초여름의 숲

야, 네 엄마, 아직 안 왔냐?헛간에서 재소쿠리를 들고나오던 아버지가 묻는다.고추 따러 밭에 갔는데요.아들은 마루에 걸터앉아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건성으로 대답한다.벌써 저녁밥 할 때가 되어 가는데, 이 여편네가 왜 안 오는 거야...귀담아들을 리 없는 아들인 줄 알면서 들으라는 듯, 혼잣말처럼 웅얼거리며 재를 듬뿍 퍼 담은 재소쿠리를 뒤꼍 텃밭으로 가는 아버지.잠시 후, 뒤꼍을 돌아 나온 아버지는 빈 재소쿠리를 헛간에 두고 나오는 아버지는, 뭔가 짚이듯, 아무래도 안 되겠는지 옷에 묻은 먼지들을 툭툭 털며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 쪽...

권천학 문학서재 우주과학과 진학안내

며칠 전, 손자와 함께 오랜만의 외출을 했습니다. 한인여성회의 우주과학 세미나와 입학 안내 행사였습니다. 제가 점찍은 것은 우주과학이라는 단어였고, 입학 안내라고 하니까, 요즘 12학년인 손자가 막 대학교 진학을 앞두고 여러 가지 모색을 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도 했습니다.저는 평소과학에 관심이 많은 데다 특히 우주과학에 관한 관심도 높아서 늘 그런 쪽에 귀를 기울여왔습니다. 제가 어리고 젊은 시절에는 그런 분야에 관한 공부의 기회가 별로 없었고 저 스스로가 다른 공부에 치어 관심을 두지 못했지만, 세상을 살면...

권천학 문학서재 나, 길들이기

오늘은 가족들과 함께 맥마이클 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맥마이클 미술관은 가끔 가족 나들이를 하는 곳입니다만, 오늘의 나의 행장이 약간 달랐습니다. 평소에 메지 않던 배낭을 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차에 타고 있던 가족들이 나를 의아한 눈으로 보는 듯했습니다.오늘부터 외출할 땐 배낭을 메고 다니기로 작정했지~ 하고 묻지도 않는 대답을 했습니다.평소에 가방이나 물건을 들고 다니는 일을 매우 싫어해서 외출할 때는 항상 맨몸으로 다녔습니다. 당연히 들고 다녀야 하는것처럼 여겼던 핸드백도 젊어 한때였을 뿐, 오히려 배낭으로 바꿔 무겁게 ...

권천학 문학서재 런던의 택시 운전사

뇌 건강과 치매 예방을 위해서 공부합시다!얼마 전, 뒤늦은 봄눈이 내린 아침이었습니다. 이른 아침, 커튼을 젖히자 모처럼 하얀 세상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예년에 비해 눈이 적어서 겨울맛이 덜 난다고 아쉬워하며 벌써 스며드는 봄기운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여서 반가운 마음이었습니다.예년의 겨울에 비하여 눈이 적었던 토론토의 올겨울, 왠지 겨울맛이 적은 것 같은 아쉬움 속에 성급하게 전해져오는 고국의 이른 봄소식에 이번 겨울은 그냥 가는가보다 하는 터여서, 눈이 하얗게 쌓인 창밖의 눈이 그래도 겨울티를 내는구나 했는데, 불쑥, 떠오른 것이...

권천학 문학서재 스크루플레이션(screwflation)

지난 칼럼 애플레이션의 마지막 부분에서 스크루플레이션(screwflation)이란 말을 언급했으니, 이번엔 그 스크루플레이션에 대한 이야기해야 하겠기에 이어서 이 글을 후속으로 쓴다.애플리케이션이란 말은 나를 옛날의 경제학 강의실로 끌고 갔지만 스크루플레이션은 스크루가 경제 용어로 사용되었다는 놀라움과 함께, 오래 전의 경제학 강의실로 나를 끌고 갔다. .스크루플레이션이란 말은 경제 공부를 했던 강의실에서는 들어보지 못했던 용어라서 검색해 볼 수밖에 없었다.게티이미지뱅크.스크루플레이션은 쥐어짠다는 의미의 스크루(screw)와 물가 ...

권천학 문학서재 개기일식(皆旣日蝕)의 깨우침 중에서

개기일식이 가까워지면서 KMS(K문화사랑방)의 회원들도 정보와 사진들을 공유했다. 할리팩스에서 살고 있는 한 회원 부부는 개기일식의 시간에 맞춰 뉴브런즈윅으로 관찰 여행을 떠나기도 했고, 다녀온 후 줌으로 진행되는 KMS(K문화사랑방)의 토론 시간에 감동적인 소감을 들려주기도 했다.나 역시, 모든 식구가 각자 바쁜 일정 때문에 떠날 엄두는 내지 못하고, 대신 베란다에 랩탑과 몇 개의 전자 기기들을 설치해 놓고 검은 안경들을 쓴 채, 일식(日蝕)을 중개하는 NASA의 방송화면을 열어 놓고, 관심사와 정보들을 나누면서 토론토의 하늘을 ...

권천학 문학서재 애플레이션(Applation)

지금 한국에선 고물가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과일값 인상이 물가 인상을 주도하는 중심이 되고, 사과가 단연 주연급 스타가 된 모양새를 빚고 있다. 물가(物價)는 당연히 경제 안정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고물가 현상은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겪고 있는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 중의 하나로 각국이 해결책을 고심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최근 애플레이션이란 신조어가 나와 쓴웃음을 짓게 한다.애플레이션이란 사과(apple)+인플레이션(inflation)에서 나온 신조어이다. 인플레이션은 누...

권천학 문학서재 진단학회(震檀學會)와 진단시(震檀詩)

봄! 삼일절! 3월 들어 첫날, 의미 깊은 책 한 권을 받았다. 500페이지가 넘는 묵직한 책이었다.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金壽卿)에드가 드가(Edgar Degas)의 발레 그림 시리즈 중의 Dancers Rehearsing(무용수 리허설)이 프린트된 카드가 책갈피에 끼어있었다. 그 카드에 적힌 예의 바른 글줄에서 출판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정성과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음을 읽어낼 수 있었다.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의 사회학과 교수인 이타가키 류타(板垣龍太)가 일본의 경도(京都)인 문서원(人文書院)에서 2021년...

권천학 문학서재 우주로 쏘아올린 오케스트라 선율

2월, 셋째 주에 들어서 약간의 홀가분함을 즐기고 있었다. KMS(K문화사랑방)의 강의를 마친 후, 그리고 다음 주에 있을 스케줄 사이에 주어진 잠시의 홀가분함이었다. 이번 한 주 동안은 쉬엄쉬엄, 여유롭게 보낼 수 있겠다는 그 휴식의 시간을 흔드는 소식을 접했다. 오자와 세이지(小澤征爾)의 별세 소식이었다.나는 그에 대해서 일본이 낳은 세계적 지휘자라는 것과 그것의 배경이 되어주는 몇몇 이야기들 외에는 특별히 아는 것이 없었다. 간간이온라인상에서 접하는 그의 모습에서 일본이 낳은 세계적 지휘자라는 면모를 맛볼 뿐이었다. 어느 분야...

권천학 문학서재 Never Enough

2024년 새해가 될 무렵에 나는 병원에 있었다. 2023년 12월 말부터 2024년 초까지, 해가 바뀌는 시간 동안 병원에 있다가 나왔으니, 햇수로 2년간을 병원에 있다 나온 셈이 된다. 누군가는 나의 그런 표현에 오히려 더 맞장구쳐주며 웃었다. 물론 갑작스럽게 그렇게 되었지만, 그 기간에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특별히 새로운 생각들은 아니었다. 대부분이근래에, 나이가 지긋해지면서 했던 생각들이었으므로 특별히 새로운것이 없는 대신, 좀 더 묵직하게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그동안의 삶은 되돌아보며 정리하자는 것이었지만, 늘 미진한...

권천학 문학서재 꽃은 무죄(無罪)다

꽃으로 누군가를 때리면 맞는 사람이 아플까? 꽃이 아플까?처음 엉뚱한 듯한 그 질문을 들었을 때 글쎄~ 하고 잠시 생각을 했다. 꽃으로 맞는다는 것 자체를 생각해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퍼뜩 떠오른 것은 나만의 시론(詩論)인 <식물성의 시 쓰기>였다.문학의 길을 들어서서 밑도 끝도 없이 내달리면서 시에 매달리던 1980년대, 방황과 갈등을 넘어서고자 하는 내 자신의 문학 행위에 대한 자세를 곧추세우기 위하여 스스로 세운 나만의 이론이다. 그렇게 시작한 나의 시론 <식물성의 시 쓰기>를 지금까지 마음속에 품...

권천학 문학서재 인디언 썸머(Indian Summer) 그 이후

뜰에서 공중돌기를 하는 가을바람에 날리는 낙엽을 본다. 여름을 지나온 화초들의 어수선한 숨소리를 가다듬어 주다가 퍼뜩, 짠해진다.어쩔꺼나! 이걸 어쩔꺼나!들깨나무를 내려다보며 다급한 심정으로 내뱉는 소리다.어디 들깨뿐인가.앞 뒤뜰에 있는 무궁화나무 역시 모두 가지마다 촘촘하게 초록색의 꽃망울들을 매달고 있다. 다문다문 분홍보라 혹은 흰색의 꽃송이를 피우고 있긴 하지만 아직 피우지 못한 꽃망울들이 많다.가지가 무겁도록 꽃망울들을 조랑조랑 매달고 있는 무궁화나무는 마치 긴 다리에 단추 모양의 빨판을 빈틈없이 매달고 있던 말린 피등어(피...

권천학 문학서재 2등의 의미와 1등의 품격

열여섯 살인 손자가 서니브룩 공원에서 열린 18회 평화마라톤에서 남자부 2위(종합3위)를 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10km의 도전으로, 성적도 작년과 같다. 당연히 온가족이 응원하러 갔다. 그런데 두 가지 교훈과 특별한 일 한 가지를 수확으로 거두었다.두 가지 교훈은 2등의 의미와 1등의 품위와 품격에 대한 새김이고, 특별한 일은 내가 일반인 걷기 5km에서 메달리스트가 된 것이다.특별한 일부터 이야기 하자면, 나는 오랜만의 외출에서 몇몇 지인을 만났다. 지인들은 모두 걷기대회의 참여자였는데, 반가움에 더하여 나에게도 함께 걷자...

권천학 문학서재 수면시간과 이타심(利他心)의 관계

할머니 안녕히 주무셨어요? 내 방으로 와서 늘 하는 아침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던 손녀가 뭔가 석연찮았는지, 다시 허리를 정중하게 굽히고는 또박또박 한국말로 반복하며 나의 기색을 살핀다. 혹시 내가 알아듣지 못했나 싶기도 했겠지만, 평소와 다른 나의 태도에서 뭔가 할머니 기분이 좋지 않다는 낌새를 느끼고 나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역력했다. 평소 같으면 내가 도리도! 하며 허그를 하고, 잘 잤지? 어서 아침 준비를 하렴! 하는데 오늘은 그냥 책상 앞에 앉은 자세 그대로, 컴퓨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무심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나는 미안...

권천학 문학서재 나는 매일 기적을 행한다

얼마 전에 10km 마라톤에 도전하는 손자녀석을 응원하러 가족과 함께 갔었다.펜데믹 이전 해에도 갔었는데 그땐 5km이었다. 출발점에 가까이 가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응원했고, 걸음도 몸짓도 가볍고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걷는 것도 이동하는 것도 어눌하고 힘들었다. 가능한 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허리도 꼿꼿이 세우고 보폭도 약간 좁게 잡는 등, 신경을 써야했다. 힘들었다. 아무리 펜데믹을 겪었다 해도 불과 삼년 전과 이렇게 차이가 있다니.가끔 세상이야기를 수다로 주고받는 프랑크푸르트의 선배언니를 노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