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외숙의 문학카페 우리가 시간을 묻는 이유

며칠 전 서울에 사는 동생이 전화를 했다.통화 중에 동생이 언니야, 그 영화, 언니는 안 보는 것이 낫겠더라. 하고 말했는데 그것은 내가 이미 그 며칠 전에 본, The Father이란 앤서니 홉킨스 주연의 영화였다. 동생이 그 영화를 보내 놓고 다시 전화해 안 보는 것이 낫겠다는 말을 한 것은 점점 기억을잃어가고 있는 내 짝을 의식한, 그래서 힘들지도 모를 나를 더 힘들게 할까 봐서였다.앤서니 홉킨스는 그 영화에서 알츠하이머 환자 역할을 잘 해내 큰 상을 받았는데 나는 내 짝, 힐스 목사를 생각하며 그 영화를 봤다. 사람이 평생 ...

김외숙의 문학카페 말(言)을 묻다

유난히 마음이 개운치 않은 날이 있다.말을 많이 한 날이다.하고자 한 말의 핵심은 단어 하나일 수도 있는데 말에다 말들을 얹은 날이다.가만히 입 다물고 있어도 될 일에 목소리까지 높인 날이다.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한 후엔 그래서 늘 한 사나흘 뼈저린 후회를 한다.그래서 기도 중의 하나가 말이 많다 싶을 때는 입을 좀 다물게 해 주소서.인데내 입에서 나오는 말 하나도 스스로 자제를 못하니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다.지난 한 해 동안 사람들은 타의 또는 자의적으로 사회생활을 절제해야 했다. 우선 강제로활동 반경을 좁혀놓고 사람 간의 왕래...

김외숙의 문학카페 몰라도 된단다

손자와 손녀는 오학년이 되고 이학년이 되었다.가까이 산다면 서로 나눌 것이 너무나 많은데 시절이 시절인지라 차단당하거나 생략하며 해를 넘겼다. 이래서 못 만나고 저래서 건너뛰다가 나중에 사람 노릇하며 살 뭔가가 남기나 할까 생각하노라면 참 씁쓸하다.이제 아홉 살이 된 손녀는 위의 송곳니가 빠진 채인데 그래도 내 눈엔 예쁘고 사랑스럽다. 입학식부터 온라인으로 시작해 한 해 동안 온라인 수업을 받아 온 손녀는 손끝이 야물어서 뜨개질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려서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다고 가끔 자랑을 해서 아, 다행이다, 할매를 닮지 않아서...

김외숙의 문학카페 프러포즈

지인이 밸런타인데이라고 했다.밸런타인데이에 마음 설렐 나이도 아닌 나는 오히려 모처럼 맑고 화사한 햇살에 끌려 집을 나섰다.한참을 걷고 있는데 하얀 경비행기 하나가 낮게 천천히 내 머리 위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비행기 꼬리에 내 눈으로도 읽을 수 있도록 크게 글을 새긴 긴 사각 플래카드가 따라오고 있었다. 마치 비행기가 연을 날리는 것 같았다.우리 동네 Niagara On The Lake 약간 외곽에는 작은 비행장이 있다. 토론토에서 이 동네를 찾는 대부분의 차량은 바로 그 비행장을 왼쪽에다 두고 우회전해 일직선으로 뻗...

김외숙의 문학카페 자식이니까

그는 3남 2녀의 자녀를 두었다.다섯 자녀는 하룻길에 올 수 없는 먼 곳에 살아서 한 해에 한 번 만나기도 쉽지 않다.길이 멀다 보니 자연히 전화통화로 자주 안부를 묻는데 열여덟 해 전에 내가 그와 가정을 이룬 후 가장 자주 받은 전화는 미국에 사는 두 딸로부터 온 것이었다.두 딸 중 작은딸 애나와 통화를 한 후면 그는 늘 내게 말했다, 애나는 통화를 할 때마다 걱정을 하네, 내가 죽을까 봐라고.어느 날부턴가,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던 주변 정리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중 하나가 자식들에게 가진 것을 나누는 일이었다.그는 나누기 전에 ...

김외숙의 문학카페 고등어조림

이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근 한 해 동안 각자의 섬에 갇혀 살고 있다.갑갑하고 불안하고 때로는 우울해하면서 백신 하나만 기다린 한 해였다.마침내 그 백신을 손안에 넣었다는 소식에 이제 곧 섬에서 나가겠구나하고 한숨 돌리는데 정부는 또 겁을 준다. 더 갇혀있어야 한다고.그러나 영리한 사람들은 몸 갇혔다고 마음마저 가둘 수 없다며 갇힌 채 궁리를 한다. 몸 대신 마음 풀어놓을 궁리다.작심만 한다면 섬을 탈출할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SNS는 하루에도 지구 수십 바퀴도 돌게 하고 시간도 초월하게 한다. 좀 느리긴 해도 카드 이용도 몸...

김외숙의 문학카페 우리도 그같이 벗어

다시 나목의 계절이다. 그 화려하던 색깔의 향연은 끝나고 사방은 시방 깊은 잿빛이다.겨울의 벗은 나무는 낯설다. 꽃과 열매, 잎으로 나무를 본 탓이다.벗은 나뭇가지 사이로 잎에 가렸던 집들이 보인다. 멀리 교회의 첨탑이, 가지에 걸린 크고 작은 새둥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알들이 새의 품에 있었듯 둥지들은 나무의 품에서 새들을 품었나 보다. 그러나 나무는 이제 빈 둥지를 머리에 인 맨몸이다. 날개 짓을 배운 새들이 남방으로 떠났기 때문이다.나무는, 어우러져 숲을 이루되 철저히 혼자다.벗은 나무는 긴 칩거에 든 무소유의 수도자다. 하늘...

김외숙의 문학카페 나는 지금

올 가을엔 유난히 비가 잦다. 정작 마르던 여름에는 아끼더니 꽃 지고 과실 떠난 이 가을에 시도 때도 없이 비를 뿌려 잎을 훑는다.가을이 깊어갈수록 뜰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가볍지 않았다. 언제 하루 날 잡아 겨울채비를 해야 하는데 매일 비가 오니 서글픈 심정으로 내다보기만 하다가 오늘, 찬 기운 품은 강한 비바람이 밤 내내 휘젓다가 잠시 멈춘 틈에 내 팔보다 긴 전정가위와 장갑, 장화와 갈쿠리, 그리고 자른 화초를 담을 큰 종이봉투를 챙겨 뜰에 나섰다.사실 조급한 마음에 가위를 들긴 하지만 화초 앞에 서면 늘 갈등이 앞선다. 더러...

김외숙의 문학카페 애타는 밤

더운 바람이 종일 한여름처럼 불다가땅의 것 마음껏 쓰다듬고는 홀연히 사라졌습니다.지금은 뜰의 풀벌레 소리와 대보름을 꿈꾸는 달이 반달보다 조금더 부푼 얼굴로 고요히 밤을 채우고 있습니다.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어제보다 부푼 달을 올려다보노라니곧 맞을 추석준비로 분주할 우리나라가 떠오릅니다.이마 맞대어 송편 빚고 햇과실 따고 성묘 가야 하는데 올해는 그러지 못하도록발걸음이 묶였다는 우울한 소식이 들리네요.똑똑한 기술은 너무나 끔찍한 소식 하나도 전합니다.차가운 바닷물에 밀려 북으로 간 한 사람에 대한 소식입니다.수 시간 표류하느라 물속...

김외숙의 문학카페 캔디

나이 들면 사람들은 보통 두어 가지의 약을 복용한다.남편도 하루에 세 차례 복용하는데 약의 효능이 각각 달라 행여 빠트릴까 봐 약국에서는 블리스터팩(Blister Pack)이라는 이름의 포장으로 매주 준비해 준다.사람이 평생 약에 의지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그것만큼 큰 복도 없을 것 같은데 그것이 맘대로 되지 않는다. 종이 날에도 피 흘리는 여린 육체가 산전수전을 겪으며 노년을 맞았으니 이제는 약으로 쓰다듬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아플 때 쓸 약이 있으니 다행이다.그가 약 복용을 하고 나면 나는 단 것 하나씩을 건넨다. 캔디가 될...

김외숙의 문학카페 매일이 생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8월에 들면서부터 그분은 내게 걱정을 했다. 너싱홈에 거하는 남편 생일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이었다. 이전 생일엔 자녀들과 너싱홈에서 작은 생일 파티를 열었는데 올 해는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그 걱정을 내게 한 이유는 내 남편 제임스 힐스 목사와 그분 남편의 생일이 태어난 해는 다르지만 같은 날이기 때문이다. 시절이 지금 같지 않았을 때는 두 부부가 함께 식사도 하며 같은 생일을 둔 인연을 돈독히 할 수 있었는데 코로나가 모든 것을 바꿔버린 것이다. 미국에 사는 딸이 아버지의 생신에 오고 ...

김외숙의 문학카페 "그 나이의 나도"

그때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각 학년마다 한 반씩, 교실 여섯과 담임교사 여섯 분, 교장, 교감 선생님이 계셨던 시골의 작은 학교였다.외진 곳이어서 그런지 타지에서 선생님들이 전근 오면 한 해를 채우지 못하고 떠나던 분들이 더러 있었다.내가 3학년이었을 때 담임을 맡은 남자 선생님은 경상도 사투리가 아닌 다른 지역의 말을 쓰던, 얼굴에 여드름이 듬성한 아주 젊은 분이었다.그분은 가르치는 일에 열정을 쏟았는데 달리기를 잘하던 아이들을 뽑아 선수라는 이름을 붙여 보통 왕복 삼십 리는 걸어 학교에 오가던 아이들로 하여금 학교에 오는 ...

김외숙의 문학카페 잊어도 되는 것

불청객이 떠날 생각을 않은 탓에 정작으로 와야 할 손님이 발목 묶이기를 수개월째, 드디어 지난주에 멀리 밴프에 사는 큰 아들이 왔다. 만 사흘간 운전해 한 주간 연로한 아버지를 만나고 다시 같은 길을 운전해 돌아갔다.아들은 아버지를 만나러 오기 위해 두 번이나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받았다고 했다.문지방을 넘는 사람 발걸음이 없으니 집이 곧 무인도 같았지만 고요하게 보내면서 얻은 것도 있었으니 지난 연말에 시작한 새 장편소설을 초고 마무리한 일이다. 글 쓰는 일은 먼저 번잡부터 물리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의도치 않은 고요가 글 쓸 ...

김외숙의 문학카페 폭발의 때에

사람들 세상에 일이 있듯이 자연은 저들끼리 저들의 일을 만들고 있었다.때 되었다고 잎 내밀고 꽃 피우고 지금은 꽃 진 자리에 열매들을 앉혔다.우울하던 동네는 오월 한 때 잠시 호강을 누렸다.복사꽃이, 체리 꽃이, 사과와 배 꽃, 자두와 살구꽃이 한꺼번에 만발한 무릉도원에서 사람들은 신선이었다.동네에 와인까지 넘쳤으니 신선놀음이었다.그러나 한바탕 봄꿈이었다이제 무릉도원도 신선놀음도 꽃 따라가고 며칠 무더위가 진을 뽑아 놓더니 어제오늘은 비가 내린다.꽃 지듯이 불청객도 따라 가면 얼마나 고마울까.자연은 들고 날 때를 아는데 무례한 객은...

김외숙의 문학카페 과거를 묻지 마세요

어차피 하루 이틀에 끝날 일 아니어서 이 시간을 활용할 궁리를 했다. 사실 궁리할 필요도 없었다, 갇힌 상태에서 작가가 할 일은 글쓰기이므로.글쓰기 자체가 스스로를 가두는 환경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그런데 늘 하는 그 일 말고 다른 일, 평소에 엄두를 내지 못했거나 미루고 있었던 꼭 하고 싶었던 일, 그것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갇혀있어야 하는 이 기약 없는 시간 동안 시도하리라며 작정한 것이 바로 피아노로 가요 연주를 하는 일이었다.남 앞에 드러내기엔 부끄러울 정도여서 집에서 찬송가를 연주할 때도 음을 낮춰서 혼자 즐기는 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