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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노인
발언대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국장 (editor@koreatimes.net)
- Jan 14 2020 06:50 PM
최효섭 / 아동문학가·목사
노인에게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내가 여기서 말하는 아름다운 노인이란 우아하고 보기 좋은 노인을 말한다. 그런 노인들을 많이 보았다.
헤이즐은 여성이고 90세인데 밴에 고급 가구를 싣고 다니며 아직 배달 일을 하고 있다. 젊어서부터 가구를 취급해온 상인으로 여전히 씩씩하게 뛰고 있다.
해리는 91세의 할아버지. 해변 동네에 살면서 노인 십여 명의 약을 배달해 준다. 내가 그의 집에서 닷새를 묵었기 때문에 그의 봉사활동을 자세히 목격했다. 병원과 약국, 그리고 노인들의 가정을 종횡으로 뛰어다닌다.
헬렌은 87세의 할머니. 교회 서기의 일을 무보수로 하고 있다. 주보 만들기 등으로 날마다 서너 시간씩 일한다. 몇 십 년 하던 일이니 전혀 힘들지 않다며 명랑하게 웃는다. 프랭크는 85세의 할아버지. 보수 없이 노인들을 위해 대리운전을 해주고 있다. 한국에서 노인의 이미지는 그늘에 모여 앉아 장기를 두는 모습이었는데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
미국 속담에 “닳아 없어지는 것이 녹슬어 없어지는 것보다 낫다.”(It is better to wear out than to run out)는 말이 있다. 이 얼마나 비참한 말인가. 나의 인생을 닳고 해질 때까지 입은 옷에 비유하는 것도 비참하고, 녹슬어 못 쓰게 되는 쇠붙이에 비유하는 것도 어리석다.
늙어가는 것은 닳는 것도 녹스는 것도 아니다. 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이 너무나 많고,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널려있다. 닳고 녹스는 자신을 볼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과 소유를 가치 있는 것에 투자하는 노년기가 되어야 한다.
유대인들은 노년기를 셋으로 구분한다. 65세-75세를 ‘노년 개시기’, 75세-85세를 ‘백발청춘기’ 즉 인생의 가장 원숙한 맛을 즐기는 꽃피는 시절, 85세 이후를 ‘전진하는 노년기’라고 부르는데, 성경은 ‘해를 거듭한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한국의 회춘과 비슷한 개념이다. 이런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발상에는 사람은 노년기에도 계속 성장한다는 생각이 들어있다.
하버드 대학 팀은 미국 최고의 장수촌이라 불리는 뉴저지 주 버겐 카운티를 방문하고 그들 중에서도 한국계 노인들이 오래 사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런데 장수의 비결이 뜻밖에도 그들이 교회에 다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집에서 말 할 기회가 몹시 제한되었던 노인들이 교회에 가면 실컷 수다를 떨 수 있고, 큰 소리로 노래까지 부를 수 있다. 교회마다 예배 뒤에 친교시간을 가지는데 이런 인간 접촉이 노화 방지에 대단히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혼자 앉아있는 것이 가장 나쁘다. 움직이고 말하고 웃고 활달해야 노화가 방지된다. 먹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 뜻에서 나는 은퇴를 되도록 늦추라고 권하고 싶다. 생명이란 곧 움직이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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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한국일보 편집국장 (editor@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