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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백신을 누리자
소설가 김외숙
- 유지수 (edit1@koreatimes.net)
- Apr 20 2020 07:10 AM
티브이를 틀면 그 뉴스이고 신문도 온통 그 뉴스였고 지금까지 그러하다.
급기야 이 나라의 수상이 매일 아침, 질병의 상황과 국민들이 지켜야 할 수칙, 그것으로 파생되는 경제적인 문제 등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 등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처음 수상이 관저 앞에서 국가적인 대응에 대한 설명을 하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기 시작할 때만 해도 신선해 보였다. 의료서비스 결과의 진전보다 바이러스가 더 빠르게 확대되고 있었음에도 최고 지도자가 저렇게 관심을 갖고 애를 쓰는 한 머잖아 이 질병도 끝이 나겠다 싶은 희망과 정부에 대한 믿음마저 갔다.
그런데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지, 맨 날 아침마다 어디서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병을 얻었고 얼마나 죽었으며 병에 걸리고 싶지 않으면 집에 있으라는 친절한 지시 듣는 일에 점점 거부감이 느껴졌다. 솔직히 알아서 잘하고 있는데 아침마다 수상이 나타나 겁주는 것 같았다, 적어도 내게는.
급기야 나는 티브이를 끄고 뉴스는 당분간 안 보기로 작정을 했다. 그 전에는 없던, 가슴이 답답해지는 증세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국경을 두지 않고 퍼지고 있는 이 질병으로 나는 몹시 신경을 쓰고 있던 중이었다. 어머니와 형제들과 자식 가족을 한국에 두고 있으니 한국 걱정, 그 나라 수상까지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는 지경이 된 영국에 남동생과 조카가족이 살고 있으니 영국 걱정, 기하급수로 환자들이 늘어나고 죽어간다는 뉴욕시에는 오빠가 살고 있으니 미국 걱정, 그리고 캐나다 걱정이었다.
특히 한국의 연로하신 어머니와 마스크와 손 씻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는 어린 손 자녀들, 직장에 다니는 아들 내외와 형제들, 그리고 만일 내가 감염이 되면 연로한 남편, 힐스 목사에게 금방 옮겨갈 텐데 그땐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야, 하는 걱정 등, 아직 생기지도 않은 일까지 앞당겨하노라니 산지사방에서 바이러스가 동시다발로 가슴을 죄여 오는 것 같았다.
‘뭐야!’
이 일로 처음 내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던 공포를 느낀 건 텅 빈 마트의 선반 앞에서였다. 평소엔 태산 같이 쌓여있던 빵과 계란, 우유 진열장에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식인 쌀 같고 김치 같고 물 같은 식품이었다.
아마도 공황상태 같은 찰나였을 것이다. 빈 화장지 선반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분명 뭔가와 전쟁 중인데 설마 하며 만무 심한 채 있다가 바로 뒤통수 한 대 제대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텅 빈 선반 앞에서 가슴 죄여 드는 위기를 느낀 일은 내 인생에 처음이었다.
사실 빵과 우유, 계란이 아니어도 대신할 식품은 집에 두고 있었다. 문제는 빵이며 계란이 아니라 위기의식을 부추기던 군중심리에 휘둘린 내 심약함과, 차고 넘치던 기본 식품이 사라진, 빈 선반에의 낯섦이었을 것이다. 우리 눈은 이미 차고 넘치는 것에 너무나 익숙하던 터였으니까.
그 공포는 생각보다 쉬이 사라지지 않아서 다음 날에도 사러 갔다가 빈손으로 왔고 사흘 째 겨우 빵 한 로프, 계란과 우유 한 팩씩을 살 수 있었다.
‘허!’
며칠 안 먹어도 그뿐인 빵과 우유, 계란 꾸러미를 사흘 째 가 기어코 사들고 마트에서 나오는데 헛웃음이 나왔다. 정말 전쟁이 나면 총 맞아서가 아니라 이성 잃고 허둥거리다 죽겠구나, 싶었다.
나처럼 불안에 휘둘려 꼭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까지 태산같이 들고 간 사람들 때문에 마트에서는 한 사람에게 일정한 분량만 사도록 해 지금은 사람도 마트의 분위기도 평정을 찾은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도 갑갑한 내 마음이었다.
오래 전 고등학교 3학년 때 나는 늑막염에 걸려 고생을 한 적이 있다. 늑막염 치료가 끝나자 결핵이 시작되어 이십대 초반에 치료를 받고 완치되었는데 결혼을 앞두고 건강검진으로 완치된 엑스레이 결과를 남편 될 사람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이제는 까마득한 옛 일이 된 이 경험이 코로나 질병과 연결되어 내 마음을 또 불편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 질병의 바이러스가 폐렴을 앓게 하고 그래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은 매스컴에서 매일 보고 듣던 말이었다.
열도 기침도 없이 가슴만 갑갑한 이 상태를 도저히 방치할 수 없어 급기야 패밀리 닥터를 만났다. 아무래도 엑스레이로 확인을 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엑스레이 찍을 일 아니에요. 요즘 신경 써서 혈압 오르고 가슴 갑갑해하는 분들 더러 있어요.”
패밀리 닥터께 병력과 최근의 증세를 얘기했더니 진찰 후 내게 한 소견이었다. 그냥, 스트레스받지 말고 마음 편히 가지라는 것이 처방이었다.
평소 진중한 의사가 웃으며 하는 말로 보아 스트레스가 분명하기는 한 것 같은데 이 시점에, 보고 들리는 소리라고는 코로나뿐인데 어떻게 하면 귀 막고 눈 감고 살 수 있는지 내게는 그것이 또 갑갑한 일이었다.
하기는 방법이 영 없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만 마음을 바꾸면.
바로 나가 걷는 일이었다. 걸으며, 딱딱한 나뭇가지 비집고 오종종 앙증맞게 얼굴 내미는 곱고 여린 새순이며, 햇살에 다투어 화사한 웃음 터뜨리는 봄꽃 소리 듣는 일이었다. 마음의 병이라니 마음으로 보고 들으며 치료할 수밖에.
의술이 만들 백신은 계절로 치면 아직도 겨울이지만 우리는 이미 봄이란 백신을 두고 있다. 세상을 만드신 분이 미리 준비해 둔 백신이다. 돈 드는 일 아니니 사람 간에 거리 지켜 걸으며 마음껏 보고 듣고 누리면 되는 것이다.
그래도 봄이어서 다행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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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수 (edit1@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