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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황현수의 들은 풍월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Dec 11 2024 01:33 PM
고국은 긴 겨울의 시작이 될 것 같다. 기적적으로 비상계엄은 5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앞으로 정국은 더 짙어진 안개 속이다. 그 밤에 국회로 달려간 열혈 시민들에게 마음속 깊이 감사드린다. 그리고 비상계엄 속에서 성난 국민과 대치하며 큰 충돌 없이 상황을 마무리한 군인과 경찰들에게도 감사한다.
이번 상황은 SNS를 통해 모두 다 생중계돼 이곳 토론토 교포들도 다 지켜볼 수 있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뭔가 판단하려고 하고, 내적 충돌을 하며 최대한 소극적으로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명령을 복종할 수밖에 없는 조직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번뇌하며 해결하려는 젊은 군인과 젊은 경찰의 성숙한 행동이 국가를 혼돈에서 건져냈지 싶다.
한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54세). AP
마침, 오늘이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는 날이었다. 비상계엄의 트라우마로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에 대해 쓴, 그녀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 이런 글이 있다.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114쪽>
노벨문학상 선정 위원회 위원인 안나-카린 팜(Anna-Karin Palm)은 "한강의 작품 중 어떤 것을 가장 먼저 추천하겠느냐"는 질문에 <소년이 온다>를 꼽았다. "트라우마가 어떻게 세대를 넘어 계승되는지를 다룬, 역사적 사실을 아주 특별하게 다룬 작품"이라며 선정이유를 밝힌다.
2024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소년이 온다> 창비 제공
스웨덴 한림원, 수백여 명의 청중이 한강 작가만을 바라본다. 그녀는 1979년 4월 여덟 살에 지은 시를 고요히 읽어 내려갔다. 작가의 수상 기념 연설 제목인 ‘빛과 실’을 나긋하게 천천히 한국말로 공간을 매워 갔다.
그의 수상 소감이다. “지난해 1월, 이사를 위해 창고를 정리하다 낡은 구두 상자 하나가 나왔다. 열어보니 유년 시절에 쓴 일기장 여남은 권이 담겨 있었다. 표지에 ‘시집’이라는 단어가 연필로 적힌 얇은 중철 제본을 발견한 것은 그 포개어진 일기장들 사이에서였다. A5 크기의 갱지 다섯 장을 절반으로 접고 스테이플러로 중철한 조그만 책자. 제목 아래에는 삐뚤빼뚤한 선 두 개가 나란히 그려져 있었다. 왼쪽에서부터 올라가는 여섯 단의 계단 모양 선 하나와,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일곱 단의 계단 같은 선 하나. 그건 일종의 표지화였을까? 아니면 그저 낙서였을 뿐일까? 책자의 뒤쪽 표지에는 1979라는 연도와 내 이름이, 내지에는 모두 여덟 편의 시들이 표지 제목과 같은 연필 필적으로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페이지의 하단마다에는 각기 다른 날짜들이 시간순으로 기입되어 있었다. 여덟 살 아이답게 천진하고 서툰 문장들 사이에서, 4월의 날짜가 적힌 시 한 편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의 두 행짜리 연들로 시작되는 시였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 주는 금실이지. <중략>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그 실에 연결되어 주었고, 연결되어 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왜,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받았을까? 문학상은 거의 개인에게 수여된다. 작가가 그동안 써온 글과 삶을 모르면 이해하기 어렵다. 수상 기준에서도 다른 분야와 다르다. 과학 분야는 자연에 존재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지만, 문학은 그 반대로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전부다. 과학은 이미 존재하는 답을 탐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학에는 답이 없다. 너와 나의 생각이 다르고, 개인과 집단 사이의 이익이 다르기 때문이다
문학 작품은 대중을 설득하지 못하면 아무도 읽지 않는다. 베스트셀러가 되려면 나의 감정을 독자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하지만, 사람마다 똑같은 상황을 다르게 느낀다.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르게 느낀다고 따지고 설득하려 들면 안 되는 것이 문학이다.
솔직히 한강의 작품은 읽기 어렵고 불편하다. 가족과 전통, 상식과 이념, 국가와 개인 등 다양한 집단의 폭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감당하기 어려운 폭력을 담담하고 세밀하게 묘사한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삶에서 악당이 된다. 내가 피해자이기도 하고 동시에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한강의 작품은 불편하다. 하지만, 이 불편함이 한강의 차별화고 이미지다.
이번 노벨문학상은 ‘한강을 통해 현대의 개인이 입은 상처를 보여 준 것이다’라고 한다. 노벨은 다이너마이트, 전쟁, 살상무기, 벼락부자, 양심의 가책 등으로 노벨상을 만들었다. 다시 말해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간 본성을 말살되는 것에 대한 반성이 노벨상 재단의 설립 이유다. 이번 과학 분야의 특징은 인공지능의 약진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무지성 발전에 대한 경고와 우려도 지식사회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여는 과학 기술의 반대쪽에서 노벨상의 균형을 잡는 무게 추 역할을 한 것이지 싶다.
소통과 공감이 글을 쓰는 이유다. 소통은 강제가 아니라 남을 설득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그래서 국가는 국민과 잘 소통해야 하고 사랑해야 한다. 아무튼 어수선한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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