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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떡, 요구르트 단맛 확 이끌어내는 메이플 시럽
팬케이크, 와플, 프렌치 토스트의 화룡점점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public@koreatimes.net)
- May 12 2020 04:51 PM
팬케이크의 핵심은 시럽이다. 비빔밥에 고추장이 빠지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 듯 팬케이크도 메이플 시럽이 없이는 완성되지 않는다.
▲ 메이플 시럽의 제철은 2~4월이다. 나무에 구멍을 뚫고 배출구와 관을 통해 24시간 수액을 추출한다.
수액 40ℓ에서 시럽은 1ℓ에 불과
퀘벡주에서는 조합이 메이플 시럽의 가격을 엄격하게 관리한다. 나의 숲(혹은 농장)에서 나온 메이플 시럽이라고 해서 임의로 가격을 붙여 팔 수가 없다. 그래서 조합은 ‘메이플 시럽계의 석유수출국기구(OPEC)’라 불리고, 실제로도 출하량을 통해 가격을 엄격히 관리한다. 생산량이 많은 해에는 잉여분을 드럼통에 포장해 창고에 비축했다가 적은 해에 방출해 원하는 수준으로 유지한다.
달콤하고 걸쭉해 메이플 시럽을 꿀과 비교할 수도 있다. 일정 수준 서로 대체해 쓸 수도 있는 감미료이지만 둘은 사뭇 다르다. 당연하게도 꿀은 동물성이고 메이플 시럽은 식물성이지만 차이점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꿀은 벌이 목숨을 바쳐 일해서 걸쭉한 상태로 만들어 놓지만 메이플 시럽은 사람이 열심히 완성시켜야 한다. 처음 나무에서 추출했을 때에는 묽은 수액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무 단풍나무나 찌른다고 해서 미래의 시럽인 수액이 흘러 나오는 것은 아니다. 퀘백주 외에도 미국의 버몬트주를 비롯한 북동부, 뉴잉글랜드 지방에 서식하는 설탕 단풍나무(Acer Saccharum)를 비롯한 세 가지 품종 만이 메이플 시럽이 될 수 있다.
또한 사시사철 메이플 시럽을 생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메이플 시럽의 제철은 한겨울에서 초봄 또는 2~4월의 3개월이다. 밤은 매우 춥되 따스한 시기가 뒤를 이어야 한다. 그래야 온도 변화를 통해 나무 내부의 압력이 높아지면서 원료인 수액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뽑아낼 수 있다.
이런 시기에 나무에 드릴로 구멍을 뚫고 배출구와 관을 꼽아 모은 수액을 24시간 이내에 끓여 졸이기 시작한다. 당분 함유량이 2~3% 수준으로 낮으므로 그보다 오래 보관하면 수액이 변질하기 때문에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수분의 증발이 빠르게 일어나도록 수액을 최대한 넓은 팬에 담아 센 불로 시럽의 당 함유량이 66%(100g당 당이 66g)까지 졸인다.
졸이고 나면 결국 40대 1 의 비율, 즉 40ℓ의 수액을 가지고 단 1ℓ의 메이플 시럽을 만들 수 있다. 나무로 환산하자면 한 그루당 1년에 250㎖ 꼴이다. 또한 나무가 적어도 40년은 자라야 수액을 뽑을 수 있고 100년이면 은퇴시켜줘야 한다.
메이플 시럽은 색을 중심으로 여러 기준에 따라 등급을 나누는데, 미국과 캐나다가 다르고 또 주마다도 다르므로 너무 고민하며 이해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많은 생산자의 시럽을 섞어 제품화하므로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구분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
▲ 팬케이크에는 메이플 시럽이다.
떡, 요구르트와도 찰떡궁합
한편 굳이 다공질의 빵류, 혹은 밀가루 음식이 아니더라도 메이플 시럽은 탄수화물의 맛을 두 차원쯤 올려준다. 가래떡을 겉이 바삭하지만 타지는 않도록 최대한 인내심을 가지고 약한 불에서 천천히 굽는다. 그리고 조금 식혔다가 양 손으로 잡아 당기면 바삭한 겉은 갈라지고 말랑해진 속은 쭉 늘어난다. 이를 적당한 선에 끊어 메이플 시럽을 찍어 먹으면 꿀이나 조청처럼 진하게 떡에 착 감기지는 않지만 오래 졸여 끓여낸 특유의 향이 또 다른 맛의 경험을 이끌어 낸다.
이미 충분히 맛있지만 굵은 바닷소금을 몇 알갱이 뿌려주면 입 안에서 바삭하게 터지며 ‘단짠’의 밀고 당기기가 벌어져 최대한의 경험을 맛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꿀보다 묽은 데다가 맛도 잘 어울려 요구르트 단맛의 주도권을 잡는데 요긴하게 쓸 수 있다. 단맛이 아예 없는 요구르트를 사서 메이플 시럽을 입맛대로 섞어 먹자.
요즘은 커피나 초콜릿 등 싱글 오리진 열풍에 힘입어 ‘싱글 포레스트’ 메이플 시럽 이 등장하고 있다. 한 군데의 산지나 농장에서 생산한 콩만 가공한 커피 원두나 초콜릿처럼, 하나의 숲에서 추출 및 생산한 시럽만 병에 담아 판매하는 것이다. 원래 지역 혹은 조합 별로 생산한 시럽을 한데 모아 병입 하는 게 표준처럼 자리 잡고 있는데, 일종의 예외로 한정된 지역의 산물만 상품화한다.
대부분의 메이플 시럽 농가가 소규모이기에 이런 생산 및 브랜딩이 크게 어렵지는 않지만, 관건은 결국 맛이다. 넓게는 하나의 밭에서만 생산하는 와인까지 포함, 싱글 오리진 기호 식품은 ‘테루아’를 장점으로 내세운다. 한정된 규모의 산지만이 품고 있는 토질이며 기후 조건 등의 세부 요인인 테루아가 기호 식품의 개성을 결정짓는다는 게 핵심 논리이다.
▲ 요구르트의 단맛을 이끌어내는 데도 메이플 시럽이 요긴하다.
그래서 메이플 시럽도 싱글 포레스트 제품이 더 맛있을까? 좀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지금까지 나온 자료로 판단해보면 꼭 그렇지 않다. 일단 테이스터, 즉 맛보기 전문가들이 ‘대세에는 지장 없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제품 또한 절대적으로는 엄청나게 비싸지 않으므로 (일반 메이플 시럽의 2배 안팎),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경험치를 늘린다는 차원에서는 시도할 가치가 있다.
▲ 바삭하게 구운 떡을 꿀 대신 메이플 시럽에 찍어 먹으면 또 다른 맛의 경험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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