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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품은 가슴의 멍 언제 풀리나
노예해방 되자 짐크로우법 제정해 또 분리 차별
-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
- Jul 08 2020 07:06 AM
손영호 | 칼럼니스트·토론토
■ 미국사회에서는 한 방울의 흑인 피가 섞여도 태어난 아이는 흑인으로 규정되는 이른바 '한방울의 법칙(One Drop Rule)'이라는 인종 분류방법이 20세기까지 존재했다. 이것은 오랫동안 전통적으로 인정되어 왔다. 이로 인해 외모적으로 백인에 가까운 흑인들은 백인처럼 행세하는 '패싱(passing)' 사례가 많았다.
이러한 흑인패싱과 삶의 갈등을 다룬 영화가 1959년 더글라스 셔크 감독의 '삶의 모방(Imitation of Life)'이었다.
그런데 2015년 6월 백인이면서 흑인행세를 한 레이첼 돌레잘 사건으로 '인종전환(transracial)' 논쟁이 일었다. 성전환(transgender)처럼 스스로 인종을 선택했다는 의미다. 돌레잘은 그때 방송에 출연해 "당신은 백인인가, 흑인인가"라는 진행자의 물음에 대해 "나는 흑인이라고 규정한다(I identify as black)"며 "나는 결코 백인이 아니다. 나를 백인이라고 규정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백인패싱'을 주장하여 새삼스런 흑백인종 문제가 불거졌다.
또 최근 미국에서 '흑인사망' 시위 확산 영향으로 헐리우드 고전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가 미국 스트리밍서비스 HBO맥스의 방영 목록에서 삭제됐다. 1939년 개봉한 이 영화는 10개 부문의 아카데미상을 휩쓴 명작이지만 흑인에 대한 인권침해, 인종차별을 고착화하고 백인 노예주를 영웅적으로 묘사했다는 비판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 미국의 인종차별주의는 가장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되는 노예제도에 그 연원(淵源)을 두고 있다. 흑인작가 알렉스 헤일리(1921~1992)가 자기 조상의 뿌리를 200년이나 거슬러 올라가서 7대에 걸친 발자취와 행적을 더듬어 내려오며 노예제의 실상을 밝힌 '뿌리(Roots)'가 1977년 1월 ABC TV 대하드라마로 방영됐다. 이는 미국 역사의 고해성사였으며 피부빛을 초월한 인류적 교감과 감명을 준 센세이셔널한 작품이었다.
노예제도는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 1월1일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을 선언하고, 2년 뒤인 1865년 수정헌법을 통해 법적으로 폐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땅에서 인종분리와 차별은 '조직적' 또는 '법적인 흑백 분리'라는 교묘한 명분으로 1960년대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
■ 남북전쟁 후 남북통합기(1865)에 여전히 ‘노예제 유지’를 원하던 남부 11개 주는 선수를 쳐 흑인 준노예 시스템을 정당화하는 듯한 '흑인단속법(Black Code)'을 제정했다. 그러나 이 법이 1866년 '투표권법'에 의해 폐지되자 그들은 '짐크로우법(Jim Crow Laws)'을 제정한다.
'짐 크로우'라는 이름은 백인이 흑인으로 분장하고 뮤직코미디를 한 블랙페이스 민스트럴 쇼(Blackface Minstrel Show)의 1828년 히트곡 ‘Jump Jim Crow'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그후부터 '짐크로우'는 '니그로(흑인)'를 뜻하는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1876년부터 1965년까지 시행됐던 '짐크로우법'은 미국 흑인들이 "분리됐으나 평등하다(separate but equal)"는 교묘한 사회적 지위를 갖게 했다. 예를 들면 공립학교, 공공장소, 대중교통에서의 인종분리는 물론, 화장실, 식당, 식수대, 심지어 군대, 교도소, 교회, 묘지에서도 백인과 흑인은 분리됐다. "개와 흑인은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버젓이 나붙었다.
대부분의 짐크로우법들은 1964년 '시민권법(Civil Rights Act)'과 1965년 '투표권법'에 의해 폐지되었다. 최근에 스티브 맥퀸 감독의 영화 '노예 12년’(2013), 피터 파렐리 감독의 영화 '그린북’(2018) 등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 냉전이 극에 치닫던 1960년대의 미국은 격동기였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인권운동과 여성 해방운동, 그리고 '젊은이의 반란'으로 일컫는 히피운동, 동성애 운동 등이 진행된 시기였다.
또한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1917~1963)가 암살되었고, 이어 흑인 인권 운동가이자 이슬람 운동가인 맬컴 X(1925~1965)와 흑인해방 및 인권운동가인 침례교 목사 마틴 루터 킹 2세(1929~1968), 로버트 F. 케네디(1925~1968)가 줄줄이 암살 당하던 시기였다.
■ 짐크로우법에 의해 엄청 피해를 본 사람 중에는 스웨덴 출신인 청순한 미모의 여배우 메이 브리트(86)가 있다. 그녀는 흑백간 결혼이 금지됐던 1960년 11월13일 흑인 가수이자 배우인 새미 데이비스(1925~1990)와 결혼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듬해에 딸까지 낳았으나 이로 인해 브리트는 촉망받던 은막계를 떠나야 했고, 데이비스는 미국의 대부분 지역에서 활동을 금지당했다.
한편 ‘사라져 주면 좋겠다’ 싶은 아메리카 원주민에게는 "백인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이면 원주민이 아니다"라는 원칙을 적용했으니 제멋대로식 인종규칙의 아이러니다. 2009년에는 흑인대통령도 나오고 외관상 백인들의 차별적 태도는 많이 개선됐으나 아직도 흑인 유전자를 더럽고 오염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회공학적 인종차별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니 흑인이나 혼혈인의 가슴에 맺힌 멍은 언제 풀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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