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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와 환경, 질병의 이중 코드
생활습관 따라 달라지는 유전적 영향력 규명
- 박해련 인턴기자 (press3@koreatimes.net)
- May 23 2025 02:52 PM
유전자가 만성질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의사는 만성질환에서 유전적 요소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며, 식습관과 운동량 같은 생활습관이 심장질환 발병 여부를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질병 유전학을 연구하는 학자는 생활습관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유전적 요인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역할을 한다고 반박한다.
2003년 인간 게놈이 해독된 이후, 유전학자들은 특정 질환 발병 위험이 유전적 요소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질병 유전율(heritiability)을 추정하는 연구들은 유전적 차이가 전체 질병 위험 중 상당 부분을 설명한다고 보고한다. 예를 들어 제2형 당뇨병은 약 17%, 조현병은 약 80%가 유전적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만성질환은 여러 유전자에 걸친 변이들이 영향을 미치는 다유전자(polygenic)적 특성을 지닌다.
복합질환은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의 상호작용에 의해 발병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분석하는 연구는 기술적 한계와 대규모 일관된 데이터 부족으로 인해 드물다. 최근 연구자들은 새로운 데이터를 활용해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질병 생물학에 미치는 복합 효과를 정량화할 수 있는 도구를 개발했다.
연구자들은 아스피린 복용과 대장암 사이의 관계를 예시로 들며, 약물 효과조차 유전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01년 프레드 허친슨 암연구소(Fred Hutchinson Cancer Research Center) 연구자들은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습관이 대장암 발병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가설을 검증했다. 이들은 아스피린 대사 속도가 느린 사람에게 보호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약물의 효과가 유전적 특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러한 단일 유전자 변이가 치료 효과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드물다. 대부분의 경우 유전 변이는 아주 미미한 영향만을 주며, 수백 개의 변이가 누적돼 질병 위험을 증가시킨다. 이를 포착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개별 유전 변이가 아닌 전체 게놈 데이터를 집계해 전체 유전 효과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영국 바이오뱅크(UK Biobank)의 약 50만 명 규모 유전자 및 건강 데이터를 활용한 분석에서 연구자들은 다양한 유전적 변이가 공기오염, 흡연, 식습관 등 환경적 요인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분석했다. 이를 통해 세 가지 유형의 유전자-환경 상호작용을 규명했다.
첫째, 특정 환경에 따라 유전 변이가 신체 생리 지표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지는 경우다. 백혈구 수치는 흡연자와 비흡연자 간에 유전적 영향 차이가 크게 나타났다. 둘째, 특정 환경에서 전체 유전율 자체가 증가하는 경우도 있다. 체질량지수(BMI)는 신체활동량이 많을수록 유전적 영향이 더욱 커졌다. 셋째, 유전적 요인과 환경 요인이 함께 증폭되는 공동 증폭 효과도 발견됐다. TV 시청 시간이 길어질수록 허리와 엉덩이 비율에 대한 유전적, 환경적 변이 모두 증가한 것이다.
유전자와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개인별 질병 위험과 치료 효과를 결정한다. 언스플래쉬
연구자들은 성별 역시 환경 변수와 마찬가지로 유전자 상호작용에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신경증 성향은 남성과 여성 간 유전적 영향이 달랐다. 또한 하나의 형질에 여러 유형의 유전자-환경 상호작용이 동시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수축기 혈압은 유전자 변이가 남녀에 따라 다르게 작용했다.
이러한 결과는 유전자와 환경이 질병 위험에 미치는 영향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고, 사람마다 다른 질병 기전을 규명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유전자는 기능 단위로 함께 작동하는 경향이 있으며, 같은 경로를 공유하는 유전자 집합이 특정 생물학적 결과에 영향을 준다. 혈액 내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을 만드는 유전자들은 함께 작동하며, 이 경로가 빈혈이나 암 같은 질병과도 관련될 수 있다. 연구자들은 환경적 요인이 이 경로의 다양한 부위를 수정하며 유전자-환경 상호작용의 유형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본다.
이러한 연구는 향후 개인 맞춤형 치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유전자-환경 상호작용에 대한 분석은 단순히 위험 요소를 파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요소들이 어떻게 신체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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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련 인턴기자 (press3@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