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회 숙제에 대한 뒤늦은 감사

혹 자기 자랑으로 오해될까 저어되어 많이 망설이다가 그래도 공지(共知)할 필요가 있는 것은 모두에게 알리는 것이 옳겠다 생각되었고, 또 여러 해 동안 마음으로만 품어왔던 하나의 고마움을 이 계제에 공개적으로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펜을 들었다.  
 지난 12월 경기도 의왕시에 본부가 있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로부터 사료기증확인서를 받았다. 작년 10월 모국방문 때, 그동안 내가 갖고 있었던 지난 세기 70-80년대 캐나다에서 활동했던 한국민주화운동의 사료 전부를 동 기념사업회 남영동 전시관 사무실을 찾아가 손수 전달했던 바 있는데, 그것들을 기증 받았다는 것을 확인해준 증서를 보내온 것이다. 내가 사적으로 소지 보관할 게 아니거든 그것들을 취급하는 기관에 건네줌으로써 홀가분해지고 싶어서 건네주었던 것이다.  

 건네준 사료들은 자료 스크랩 파일, 사진들, 회비관리 뱅크북들, 직인 도장들, 그리고 지난 2013년 토론토 한인회가 출간한 '캐나다 한인사'(발행인: 이진수 한인회장)에 수록된 '조국민주화·인권운동 '편의 복사본 등이다. 한인사에 수록된 글에는 내가 원래 한인회에 보냈던 원본에서 일부 삭제되었던 부분이 있는데, 기왕 사료로 기증할 바엔 원본 그대로를 복사해 주는 것이 옳겠단 생각이 들어 원본을 복사해서 건넸다. 여기서 내가 한인회에 고마움을 느끼는 점을 밝히는 것이 좋겠다. 먼저 한인회가 한인사에 모국 민주화와 인권운동활동에 관한 기록도 싣겠다는 발상을 했던 점에 대해서 고맙고, 다음은 사적으로 만일 한인회가 내게 그런 숙제를 주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나는 그런 기록을 영영 쓰지 않았을 지도 모를 일인데 쓰지 않고 못 배길 기회를 주어서 쓰게 해준 점에 고맙다.  
 내가 지난 세기 70-80년대 토론토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토론토한국민주사회건설협의회 (The Council for Democracy in Korea)'에 10여 년 간 가담했던 것은 무슨 계획이나 포부가 있어서 였던 것이 아니고 문득 “저 일은 내게 주어진 숙제 같은 것”이란 느낌이 들어서 였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선거를 통해 노태우 정부가 들어선 그 이듬해에 아무 미련 없이 그 단체를 떠났었다. 그런데 그 기간에 7년 간 총무 일을 맡다보니 이런 저런 자료가 내게 있게 되어서 그것들을 기증했던 것이다. 좀 생소한 얘길 하나 곁들이면, 사람이 살아가노라면 누구나 때로 그 무엇 - “비가 온다.”는 영어 말 “It's raining.”에서 'It'처럼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으면서도 내 마음에 들어와 마치 문장의 주어처럼 내 실존성과 관계되어 있는 그 어떤 것 - 그것의 묵시적 속삭임에 이해타산을 넘어서 귀를 기울리게 되기도 하는데, 아마 그 시절 그 때에 그 'It'가 내게 “이건 네게 주어진 숙제 중에 하나야”라고 속삭였던 것 같다. 그리고 당시 같은 기간 동안 민중신문(발행인: 정철기. 16대 국회의원)이라는 주간지에 몸담았던 것도 창간과 전혀 아무 관계도 없었고, 또 글이란 것을 써본 경험도 거의 없었던 주제였음에도 우연히 그 사무실엘 갔다가 한 두 가지 도와주던 것이 버릇처럼 되어 무려 11년간 한 가족으로 묶이게 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새겨들을만한 지나간 얘기다.  

 끝으로 한 가지 첨언하면, 1979년 2월에 창간된 민중신문은 1988년 어느날 맥라렌 마이크로 출판사(McLaren Micropublishing Co.) 사람이 찾아와 판권을 출판사에 준다면 신문을 거저 마이크로 필름 판을 제작해주겠다고 제안해 온 것을 신문사가 받아들임으로써 1991년 말까지의 신문 전질이 마이크로 필름으로 제작 출판되어 캐나다 유수 도서관들에 오늘도 비치되어 있다. 혹 캐나다한인사회의 초창기 활동상을 알아보고 싶은 이가 있으면, 토론토 레퍼런스 도서관(Toronto Reference Library)에 가서 마이크로 필름판 민중신문을 열람하여 알아 볼 수 있다. (20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