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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와 한국, 1,500년간의 양국 관계
6.25 겪으면서 혈맹으로 맺어진 형제국
- 김명규 발행인 (publisher@koreatimes.net)
- Mar 28 2023 03:06 PM
왜 지진피해 이재민을 도와야 하는가
◆ 6.25 당시 한국전에 참전해 맹활약한 튀르키예군. 약 1만5천 명이 참전, 700여 명이 전사했다.
1957년 우리와 공식 국교를 수립한 튀르키예(터키)는 한국이 세 번째로 외교관계를 맺은 오랜 우방국이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으나, 우리 한국과는 매우 친근하고 국민들은 한국을 형제국으로 여긴다.
역사적으로 우리 두 민족은 1,500년 전부터 교류를 해왔다. 특히 어려운 국제정치 상황에 공동 대처했다는 기록들이 남아있다.
물론 튀르키예와 한국은 한국전쟁에서도 함께 싸운 혈맹이다. 튀르키예는 미국, 영국에 이어 4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견했으며 튀르키예군의 고귀한 희생과 용감한 활약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크게 일조했다.
동서대륙을 잇는 요충지에 위치한 튀르키예는 서구와 이슬람권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튀르키예계 국가의 종주국으로서의 역할도 활발히 하고 있다.
전 국토에 관광자원이 널리 퍼져있는 튀르키예는 한국인들에게 매력 있는 방문지다.
양국 경제교류는 특히 활발하다. 튀르키예는 이미 한국의 주요 시장으로 부상했다.
인구 8,300만 명의 99%가 이슬람교지만 헌법상 정교가 분리돼 있는 의원내각제 국가다. 공화국으로 대통령은 국민직선제다.
면적은 78만3천여 평방킬로(*한반도 22만 평방킬로). 독일의 두 배, 미국 텍사스와 루이지애나를 합친 정도. 공식언어는 튀르키예어. 최대 도시 이스탄불, 수도 앙카라.
한국동란과 튀르키예 - 전사 717명
미군 다음으로 많은 인명피해
1950년 10월17일 튀르키예 제1여단 5,400여 병력이 부산항에 상륙, 곧장 전장에 투입되어 평양 탈환 작전에서 빛나는 전과를 올렸다. 휴전까지 3년 동안 튀르키예군은 평안남도 군우리(軍隅里) 베가스 고지, 군포(軍浦) 등 곳곳에서 유엔 깃발 아래 용감히 싸웠다. 튀르키예는 미국, 영국, 캐나다 다음으로 많은 군사를 파견하였다.
특히 군우리 전투는 격전이었다. 1950년 11월28일 새벽 평양 북쪽 군우리에서 평양을 공격, 탈환하는데 크게 일조했다. 이런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가 생겼다.
전사 717명, 포로 229명, 전상 5247명, 실종 167명이었다. 이같은 피해는 참전 유엔군 가운데 미군 다음으로 컸다. 휴전 후에도 튀르키예 부대 1개 여단 병력이 계속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에 주둔, 서부 휴전선을 지켰다.
1960년 7월 튀르키예 군사혁명 정부 결정에 따라 1개 중대 병력으로 감축되어 미군 제2사단에 배속되었다. 1966년 7월7일, 경기도 파주군 적성면 식현리에 자리잡은 제16중대는 16년에 걸친 한국 주둔을 마감하고 귀국했다. 16년 동안 10개 여단 6개 중대가 교체 근무하기까지 한국을 다녀간 튀르키예군은 모두 6만여명이다.
전사자 중 462명은 부산 유엔묘지에 안장됐다. 수도 앙카라에는 ‘한국공원’이 있고 그들의 참전기념비도 있다.
(본 한국일보사는 엄청난 지진 피해를 입은 튀르키예 이재민을 돕기 위해 모금운동을 진행 중입니다. 모금액은 캐나다 적십자사를 통해 현지에 전해지고 기부하신 분들은 세금공제 영수증을 받아 세금신고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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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표수취인: Canadian Red Cross
신용카드: 이름, 번호, 만료일(Expiry Date) 기입
메모란: '튀르키예 돕기' 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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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낼 곳: The Korea Times, 1997 Leslie St. North York, ON M3B 2M3
문의: (416)787-1111(사내번호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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