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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초여름의 숲
권천학 | 시인·K-문화사랑방 대표
- 연지원 기자 (press2@koreatimes.net)
- Jun 24 2024 10:09 AM
야생동물 조심
야, 네 엄마, 아직 안 왔냐?
헛간에서 재소쿠리를 들고나오던 아버지가 묻는다.
고추 따러 밭에 갔는데요.
아들은 마루에 걸터앉아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건성으로 대답한다.
벌써 저녁밥 할 때가 되어 가는데, 이 여편네가 왜 안 오는 거야...
귀담아들을 리 없는 아들인 줄 알면서 들으라는 듯, 혼잣말처럼 웅얼거리며 재를 듬뿍 퍼 담은 재소쿠리를 뒤꼍 텃밭으로 가는 아버지.
잠시 후, 뒤꼍을 돌아 나온 아버지는 빈 재소쿠리를 헛간에 두고 나오는 아버지는, 뭔가 짚이듯, 아무래도 안 되겠는지 옷에 묻은 먼지들을 툭툭 털며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 쪽으로 향한다. 아들은 대문 밖으로 사라지는 아버지를 흘긋, 바라볼 뿐 여전히 휴대전화에 시선을 붙이고 있다. 오래지 않아 숨을 헐떡이며 대문으로 들어서는 아버지, 허위허위 손을 내저으며 야, 야, 얼른얼른...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뱉어내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아버지의 손에 무쇠 칼이 들려있다. 그러고는 급하게 헛간으로 들어가 낫을 들고나와 아들의 손에 쥐어주며 야, 야, 얼른, 얼른... 대문 쪽으로 내달린다.
그제야 뭔가 다급함을 느끼며 휴대전화 쥐었던 손에 낫을 들고 토방을 내려서는 아들, 벌써 대문 밖으로 내닫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간다. 동네 길을 벗어나 밭이 있는 길로 가는데 여기저기 동네 고샅에서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이오? 무슨 일이냐니까~~?
아버지가 벌써 소리치며 위험경고를 한 모양이다. 아버지는 숲 근처의 밭으로 달리고 아들은 영문을 오른 채 뒤따른다. 숲이 경계를 이루고 있는 밭둑에 고춧대들이 우북하게 자라있고, 주변 여기저기에 메마른 흙이 드러나 있다. 앞장선 아버지가 숲의 발치로 들어선다. 아들도 심상찮은 기색을 느끼며 아버지의 뒤를 따른다. 몇 걸음 걸어 들어간 입새의 어느 지점에서 우뚝 선 아버지는 여전히 말을 잃은 채 숨만 헐떡인다.
게티이미지뱅크.
아들이 소스라친다. 5미터가 넘어 보이는 구렁이가 듬성듬성 푸나무가 깔린 숲 바닥에 배 부분이 불룩한 긴 몸뚱이를 늘이고 있다. 휴식을 취하는 듯, 느른하게 끔벅거리는 구렁이의 눈.
짤막한 순간, 아버지는 아들의 눈을 쏘아본다. 그 눈빛에서 쏟아지는 광채에 아들은 공포에 질린다. 그 순간, 아버지는 손에 들려있는 무쇠 칼을 공중으로 쳐들더니 힘껏 내려친다.
광기 서린 비명을 내지르며 식칼을 내려치고 내려치고 내려치고... 구렁이의 목 근처에서 푸르딩딩한 액체가 솟구치면서 바닥에 깔려있던 몸뚱이가 꿈틀꿈틀 요동친다. 꼬리 부분이 펄쩍 솟구친다. 아들이 들고 있던 낫을 휘둘렀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다. 잘려 나간 꼬리가 저만큼 날아가 바위 위에 던져진다.
아버지는 구렁이의 목덜미 군데군데에 무쇠 칼을 박고 또 박는다. 아들이 낫을 들고 무쇠 칼 박힌 곳을 기점으로 해서 배 쪽으로 그어나간다. 구렁이의 뱃가죽이 갈라져 간다. 형언할 수 없는 냄새를 풍기며 쏟아지는 액체, 마치 토사물 같은 검푸른 액체가 흘러나온다. 어느 지점에선가?
엄마!
여보!
아들과 아버지의 입에서 동시에 나온 부르짖음이다.
신발이 벗어진 채 드러나는 어머니의 한쪽 발, 보라색 양말이 주름진 채 꿰어져 있고, 그 위로 검은 바닥에 빨간 꽃무늬가 박힌 일바지 자락이...
점점 드러나는 어머니의 모습, 입고 나갔던 옷 그대로 구부린 채 구린내 나는 액체에 버무려진 채 뒤틀려있는 어머니.
몽둥이를 든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들이닥친다.
지난 6일, 인도네시아 중부 지방의 칼렘팡 마을에 사는 45세 여성이 고추를 따러 갔다가 길이 5m 정도의 비단뱀에게 잡아먹힌 일을 보도한 독일 매체인 도이체 벨레(DW)의 현지보도를 인용, 각색해 보았습니다. 공원에 놀러 갔다가 위험해질 수 있으니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인도네시아나 열대 우림지역에서 일어난 일이라서 멀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위험은 산악지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숲이 무성해지는 오뉴월에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토론토엔 코요테가 자주 나타납니다. 도심 가까이에 있는 하이파크에서도 가끔 나타나 경고를 울리곤 합니다. 공원만이 아니라 가끔 주택가에도 나타나 사람과 반려동물들을 위험에 빠트리곤 합니다. 저의 집 뒤뜰에도 가끔 어슬렁거리는 스컹크 가족이 눈에 띕니다. 신기해하는 저를 가족들이 가까이 가지 말라고 경고하곤 합니다. 맞습니다. 방심은 금물입니다.
숲이 우거지는 초여름. 새끼를 치고 거느린 이때가 야생동식물의 야생성이 가장 활발하게 작용하는 계절입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공원엔 절대 혼자 가지 맙시다!♠
권천학 | 문화컨설턴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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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원 기자 (press2@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