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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끼 충만한 안동 도산면 예끼마을(하)
- 미디어2 (web@koreatimes.net)
- Mar 19 2021 03:18 PM
예끼마을 뒷산에 위치한 호계서원. 물을 피해 3차례 옮긴 이력이 있어, 아예 물난리 걱정이 없는 산꼭대기에 자리 잡았다.
골짜기마다 서당ㆍ서원ㆍ향교…
도산면은 교육의 요람
도산면에는 도산서원 외에도 다양한 공ㆍ사립 교육기관이 있었다. 예끼마을 선성현 문화단지에서 모퉁이를 하나 돌면 예안향교가 나온다. 세종 2년(1420) 건립한 공립 교육기관으로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쳤다. 600년 된 은행나무 뒤로 정문 격인 양호루가 낙동강을 바라보고 있고, 뒤편으로 강학 공간인 명륜당과 숙소인 동ㆍ서재, 제사 공간인 대성전과 부속 건물이 남아 있다.
예끼마을 뒤편에 위치한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산꼭대기 부근에 호계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입구의 널찍한 누대에 오르면 예끼마을과 그 앞으로 안동호의 잔잔한 물결이 평화롭게 내려다보인다. 호계서원은 조선 선조 6년(1573) 퇴계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세운 유서 깊은 서원인데 10여채의 한옥은 모두 새 건물이다. 안동 땅 여러 곳을 전전하다 지난해에야 이곳에 안착했기 때문이다.
서원은 월곡면(현 예안면) 도곡동에 여강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지어졌다. 1605년 대홍수로 소실되는 수난을 당했고, 본래 자리에서 북측으로 100보 떨어진 곳에 중건했다. 광해군 12년(1620)에는 학봉 김성일, 서애 유성룡의 위패를 추가 봉안했고, 숙종 2년(1676) ‘호계서원’이라 사액받는 영광도 누렸다.
▲ 예끼마을의 예안향교. 선성 문화단지 뒤편에 위치해 산성공원과 마주보고 있다.
▲ 도산서원은 여러 채의 전각이 층을 이루며 미로처럼 연결돼 작지만 다양한 풍경을 담고 있다.
그러나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고, 7년 뒤 강당만 새로 지어 명맥을 유지해오다 1973년 안동댐 건설로 임하면으로 이전하게 된다. 수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1991년 임하댐이 준공되면서 다시 한번 위기를 맞는다.
물에 잠기지는 않았지만 이번엔 여수로의 물보라와 습기로 건물이 훼손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예상치 못한 물난리를 3차례나 겪은 터라 안동 유림이 최종적으로 물색한 장소가 바로 이곳, 다시는 수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예끼마을 산꼭대기다. 도산서원과 가깝다는 것도 큰 이유였다.
호계서원에서 약 5㎞ 떨어진 호숫가에 또 다른 사설 교육기관인 월천서당이 있다. 월천 조목(1524∼1606)이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당이다. 조목은 퇴계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명종 7년(1552) 생원시에 합격했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이황 아래서 학문 연구에만 주력한 인물이다. 중종 때 세운 건물은 마루를 중심으로 양 옆으로 온돌방이 배치된 소박한 규모인데, 귀퉁이에 걸린 ‘월천서당(月川書堂)’ 현판은 퇴계의 친필이다.
월천서당은 현재 주변 정비 공사로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다. 서당으로 가는 길목에는 올해 완공을 목표로 한국문화테마파크 공사가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다. 호젓한 강 풍광을 헤치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서당 앞 나루터에는 도선 한 척이 이따금씩 오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댐 건설로 길이 끊긴 도산면과 예안면을 잇는 배편이다.
월천서당에서 약 7㎞ 거리에 도산서원이 있다. 조선시대 대표적 사립 교육기관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한국의 서원’으로 등재된,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곳이다. 주차장에서 서원에 이르는 솔숲 길도 운치 있고, 그 길에서 내려다보는 강 풍경과 강 한가운데의 시사단도 은은하다. 시사단(試士壇)은 정조 때 이황의 학덕을 기리고 지방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특별 과거시험(도산별과)을 치른 곳이다.
▲ 도산면 동부리 호숫가의 월천서당. 퇴계 아래서 학문에 매진한 원천 조목이 세운 서당이다.
도산서원엔 주 강의실인 전교당과 유생들의 숙소인 동ㆍ서재 외에 퇴계의 거처인 도산서당, 사당인 상덕사, 제자들의 기숙사인 농운정사, 서고인 광명실, 목판을 보관하는 장판각, 제수를 준비하는 전사청과 관리인의 살림집인 고직사 등 여러 건물이 층을 이루며 오밀조밀하게 몰려 있다. 문과 담을 통과할 때마다 소박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장면이 펼쳐진다. 조선시대로 먼 시간 여행을 하는 것 같다.
도산서원에서 언덕 하나를 넘으면 퇴계종택과 묘소가 있고, 그 길로 곧장 가면 민족 시인 이육사의 고향인 원천리다. 마을 어귀에 이육사문학관이 있다. 엄격한 유학자 집안 출신으로 민족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 성장한 그의 일대기와 문학적 성취를 전시하고 있다.
문학관 입구에 ‘절정’ 시비가 있고 그 앞에 그의 동상이 있다. 시인의 시선을 따라 가면 마을 앞 드넓은 들판과 낙동강이 펼쳐지고, 그 물길을 우람한 산줄기가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청량산에서 이어지는 왕모산 자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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