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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엘 콘도르( El Co'ndor)' - (35)
김외숙 소설가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Oct 18 2021 10:00 AM
23. 반 전
짧은 겨울 방학을 마친 브라이언의 두 아이들은 학교에 가야했다. 나는 두 아이들을 버스 정류장(Bus Shelter)까지 데려다 주기 위해 함께 집을 나섰다.
아이들에게 추운 날씨는 겨울의 특징일 뿐이었다. 눈길에 푹푹 빠지면서도 서로 장난치며 까르르 웃으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뛰기도 하는 두 아이의 가방을 받아 양 쪽 팔에다 걸고는 천천히 따라 걸었다.
그러고 보니 캐나다 부모들은 자녀들 양육에 비교적 대범한 것 같았다. 길고 추운 겨울에도 아이들 몸을 너무 감싸지 않고 키웠다. 성탄과 신년 휴일이 포함된 두 주간의 할로 데이를 마치고 바로 개학을 하는데 깊은 겨울이어서 거의 매일 눈이 내리고 날씨는 매섭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 추위에 학교에 다니고 스케이팅과 스키, 그리고 하키를 즐긴다. 모두 겨울 스포츠였다.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은 나라 아이들에게 겨울은 다만 즐길 계절일 뿐이었다.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강하고 탐스러운 아이들이었다.
가끔 마음 둘 곳 없듯 허전할 때가 있었다. 그 허전함은 내 품에 저렇게 탐스러운 자식이 없는 탓이었다.
내 인생에 잉태의 기회는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노라면 가장 소중한 희망 하나를 놓친 것처럼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내게 이토록 가혹한 이유를 누군가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내게 왜 이러느냐고. 지금까지는 엄마가 그 누군가였다. 아기를 낳다가 죽은 엄마였다. 생각해 보면 고단하게 살다가 어린 자식들과 남편을 두고 먼저 눈을 감아야 한, 너무나 가여운 여인이었다. 그러함에도 내가 마음껏 투정할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죽은 엄마가 내게는 가장 만만했거나 내 투정을 드러낼 엄마만큼 편한 대상을 달리 두지 못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애나 고모도 아빠랑 이 길로 학교 다녔지요?”
브라이언 딸, 레이첼이 오빠 이안과 장난치다 날 돌아보며 말했다. 아마도 아빠, 브라이언이 들려주었으리라.
그래, 브라이언과 장난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다닌 길, 브라이언을 업고도 다닌 이 길, 다 자라서는 브라이언이 날 업겠다며, 안 업히면 안고 가겠다며 떼쓰던 그 기억이 있는 이 길 없이 어떻게 내 인생을 말할 수 있을까?
“그럼, 아빠랑 고모도 너희들처럼 장난도 치며 다녔단다.”
저렇게 탐스러운 아이가 내게는 없다니, 도저히 극복해 낼 수 없을 것 같은 좌절이 눈앞을 가로막는 것 같았다. 내 능력을 넘어선 어떤 일에 나는 일찍부터 순응이란 방법으로 감당을 했지만 이 일만큼은 힘들었다. 나도 잘 키울 수 있는데, 나도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게는 왜 자식이 허용되지 않는지, 이제 기회조차도 없을 테니 이 가혹한 현실 앞에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졌다.
스쿨버스 정류장(Bus Shelter)에 좀 일찍 당도한 우리 셋은 안으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브라이언과 날 위해 추울 때, 더울 때 눈 비올 때 버스를 기다리라고 지어주신 작은 집이었다.
‘내 손자가 버스 기다릴 집이다.’
오래 전에 브라이언과 내가 대학생이 되면서 더 이상 스쿨버스를 기다릴 필요가 없게 되자 브라이언이 이젠 집을 치우자고 했을 때 아버지가 하신 말이었다. 브라이언과 내가 더 이상 버스 정류장에 들어 설 일이 없었음에도 아버지는 해마다 손상된 곳은 없는지 손수 살피셨다, 언젠가 태어날 손자들을 위해.
그 때 나는 은밀한 상상을 했었는데 브라이언과 내 아이가 버스를 기다릴 집이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발칙한 상상이었다.
아버지가 지으신 추리 하우스도 아직 두 아이들의 놀이터로 쓰이는데 이제는 어머니 대신 수아가 사다리를 타고 쿠키며 마실 것을 들고 오르내린다.
해마다 겨울이 지나고 온타리오 호수에서 비릿한 물비린내가 오르기 시작하면 겨우내 기다린 브라이언과 내가 오르기 전에 아버지는 오크나무에 걸쳐진 사다리며 추리 하우스를 먼저 살피셨다. 추리 하우스를 받치고 있는 오크나뭇가지들이 행여 상하지는 않았는지, 모진 겨울바람에 부서진 곳은 없는지 버스 정류장을 살피신 것처럼 그렇게 점검을 한 후 나와 브라이언이 사다리를 타도록 하셨는데 이제는 그 일을 브라이언이 두 아이들을 위해 스스로 하고 있다.
더 이상 버스 기다릴 일 없다면서 정류장을 없애자고 한 브라이언도 추리 하우스를 없애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대신 나서 여전히 튼튼한지 살피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데 아마도 추리 하우스에서의 추억이 브라이언에게 소중하듯이 아이들에게도 특별한 기억을 남길 것이란 생각 때문일 것이었다.
예전에 어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수아도 예쁜 방석을 만들어 추리 하우스와 버스 정류장 작은 집에다 두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진도 벽에다 걸어두는 센스를 발휘했다. 아이들은 버스정류장에다 장난감과 동화책도 두고 싶어 했지만 행여나 장난감 갖고 놀다가 버스를 놓칠까봐 수아는 허용하지 않았다.
두 아이의 엄마인 수아는 이제 아이들을 어떻게 설득하는지 알고 있다. 고집을 부리다가도 결국 다소곳이 엄마 말을 따르고 그 아이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조용히 이해시키는 수아의 모성은 내가 몹시 부러워하는 것이다. 두 아이를 모유로 키울 때 그 때는 아이를 품에 안은 그 모습이 그렇게도 부럽더니 이제는 자기 생각들을 키워가는 아이들과 다른 몸이면서도 결국 하나로 한 마음이 되어 가는 수아의 모습을 볼라치면 나는 그만 내게는 없는, 그리고 갈수록 가능성이 희박해지는 이 막막한 심정에 빠지게 되는 것이었다.
저만치서 노란 버스가 오고 있었다. 이안이 먼저 ‘버스다, 레이첼!’ 하고 나가니 레이첼이 오빠를 따라 나섰다. 두 아이들은 타기 전에 한 번씩 내 품에 안기고 버스에 올라 좌석에 앉아서는 또 손을 흔들며 학교로 갔다. 얼마나 사랑스러운 아이들인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는 와이너리에서 일하는 브라이언이 스쿨버스를 기다릴 것이다, 예전에 와이너리에서 일하다가 늘 마중 나와 기다리셨던 아버지처럼.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아름다운 삶의 방식은 시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 대를 이루리라.
아이들을 스쿨버스에 태워 보낸 후 나는 아주 천천히 걸어 집으로 가고 있었다. 온타리오 호수를 훑어온 차가운 바람이 겨드랑이로 목덜미로 스며들어 목도리 자락을 한 번 더 목에다 감았다. 목에다 두터운 자락을 한 번 감노라니 문득 그 날, 주차장 문을 열고 도서관으로 가려던 그날, 아무 연락도 없이 집을 찾아왔던 마이클이 생각났다. 늦여름과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을 맞도록 서로 연락을 않고 지내다가 그렇게 전화도 없이 찾았을 땐 분명 그럴만한 긴요한 일이 있어서였을 텐데 그 일이 바로 내게 봉투를 전하는 일인 것 같았다. 뜻하지 않게 집으로 가 집에서 마이클이 준 그 봉투를 받아오긴 했지만 나는 두려워 열어보지도 못하고 여태 내 방 탁자위에 둔 채였다.
‘당신 생각 듣고 싶은데 언제 듣지?’ 라고 해서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라고 쏘아 붙이듯 하고는 마이클이 낸 차도 다 마시지 않은 채 집을 나서게 한 그 봉투를 이제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어차피 그렇게 한 약속이었다, 관계를 다시 생각하는 시간, 두 사람 중 하나라도 관계를 이어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중단되는, 그러니까 마이클과 내 앞날이 걸린 약속이었고 그 약속의 시간 동안 둘은 의도적으로 서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얼마나 신중히 생각하다 내린 결론이었을까? 내가 침묵하고 있었으니 하마하고 기다리던 그가 조급증을 견디다 못해 먼저 나선 것이리라. 그렇게 낸 결론이었으니 그 봉투의 의미를 나는 이미 알고도 남았다.
이제 더 이상 회피해서는 안 된다는 강렬한 생각이 저벅저벅 눈길을 걷는 내 머릿속으로 일어났다. 오래는 걸리지 않을 거라고 했으니 마이클도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그 성질에 참을 만큼 참았으니 나도 미련 두지 않고 결론을 내야 했다. 사인 할 일이면 사인을 하고 내 가슴에 남은 기억들도 나는 정리를 해야 했다. 아홉 해 동안, 아니 더 어렸던 그 때, 날 괴롭혔던 그 긴 시간까지 더하면 꽤나 끈질긴 인연이었고 결국 악연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꼭이 악연이랄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아홉 해의 그 시간들이 더 어렸던 악몽의 시간을 희석하게도 했으니까.
나는 천천히 걸어 바로 집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잠시 집 뒤의 온타리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뒤뜰에 섰다. 바람에 쫓긴 물이 거품을 물고 우루루 몰려오고 있었다. 늙은 오크나무는 잎을 다 날려 보내고 맨몸인 채 삭풍을 맞고 있고 그 품의 추리 하우스는 몸을 웅크린 채 깊은 겨울잠에 빠져있었다.
‘추운데 왜 그러고 서 있니, 애나야?’
추리 하우스대신 오크나무가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일곱 살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날 지켜본, 그래서 날 아는 나무였다.
‘힘들어서 요.’
오크나무를 올려다보며 내가 혼잣말을 했다. 너무 힘들어서 그래서 무너질까봐 생으로 칼바람을 맞으며 마음을 가다듬고 싶어서였다. 날 다스리기 위해서였다. 행여 한 자락 미련이라도 남았다면 칼바람의 단호함으로 먼저 그것부터 잘라버리기 위해서였다.
‘나도 아플 때가 있단다. 아플 땐 너희들이 내 등을 타고 오르내리며 까르르 웃던 그 때를 생각하지. 나이 들어 되돌아보니 다가왔던 것들은 다 지나가고 없더구나. 널 힘들게 하는 일도 지나갈 거야.’
내가 상상하는 오크 나무가 들려줄 것 같은 말이 어쩐지 엄마가 살아 있다면 내게 들려줄 말 같았다.
‘엄마!’
나는 온타리오 호수, 내 마음 속의 티티카카 호수를 바라보며 어렸을 적의 내 언어로 엄마를 불렀다. 엄마를 부를 땐 늘 케추아어가 방언처럼 터졌다.
땅은 발목이 빠지도록 눈으로 덮여 있어도 음산한 겨울 하늘빛을 한 호수는 결코 눈에 휘둘리지 않았다. 나도 삭풍을 견뎌내고 있는 오크나무이고 싶고 겨울호수이고 싶었다. 호수가 가슴에다 눈을 받아들이듯, 그래서 물로 삭여 호수가 되게 하듯 내 앞에 어떤 엄청난 일이 일어나든 나도 휘둘리지 않고 그대로 받아 삭여 담담히 내 인생의 소중한 한 부분으로 품고 싶었다. 내 첫사랑을 가슴 깊이 묻어두고도 이제는 담담하듯이, 웃을 일 많았던 마이클과의 시간들도 내 가슴의 방 하나에다 묻어두고 싶었다.
‘나 붙잡아 줘, 엄마.’
그러나 결코 스스로는 겨울호수가 될 수 없는 나는 엄마에게 또 매달리고 있었다. 돌이켜 보니 나는 기억에도 희미한 엄마를 어떤 절박한 심정일 때마다 먼저 찾았던 것 같았다. 조앤 어머니가 아닌, 이 세상에 없는, 페루의 엄마였다.
‘잘 보내고 싶어. 나도 아프고 싶지 않아, 엄마.’
찬바람이 눈에 성가셨다.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생명도 흘러갔고 마이클도 갈 것이다.
그렇게 다 보내는 것이다. 다만 담담히 보내고 싶었다, 언젠가 길가다 만났을 때 ‘잘 있었어, 마이클?’ 하고 인사는 나눌 수 있도록.
나는 그렇게 헤어지고 싶었다.
비록 엄마로부터 아무런 대답은 들을 수 없었지만 눈을 품고 칼바람조차 흘려보낼 줄 아는 호수와 오크나무를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으므로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먼저 펜을 찾아 탁자위에다 놓았다. 이렇게 결기로 뭉쳐져 있을 때 서두르지 않으면 언제 또 무너질지 나도 믿을 수 없는, 내 마음 때문이었다.
목도리를 풀고 외투를 벗어두고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봉투, 며칠 째 탁자 위에 놓여있던 그 봉투를 열었다. 심호흡을 한 내 마음은 담담한 척 하는데 손가락이 떨고 있었다.
봉투 속에는 네 겹으로 접어진 몇 장의 문서가 있었다. 이 나라의 이혼을 위한 서류인가 보았다. 나는 서류를 펼쳤다. 이젠 차라리 담담했다.
‘...?’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일까?
이럴 리가 없다며 봉투 속과 문서를 앞뒤 뒤집어 확인했다.
‘...!’
아무리 훑어봐도 그것은 내 사인이 필요한 서류가 아니었다. 토론토- 리마, 리마- 쿠스코라고 인쇄된, 내 이름과 마이클의 이름으로 예약된 전자 비행기 예약티켓 복사본이었다.
‘쿠스코? 잉카의 그 쿠스코?’
여전히 어리둥절한 내 머릿속에 쿠스코란 단어가 잉카란 단어까지 거느리고 강렬하게 떠올랐다. 전설의 새 콘도르를 만날 잉카의 수도 쿠스코였다.
‘전능하신 콘도르여 잉카의 쿠스코 광장에서 나를 기다려주오’
‘엘 콘도르 파사’ 노랫말 중의 한 부분이었다.
‘그 쿠스코라고?’
담담한 척 하다가 어리둥절해하던 내 머릿속에다 마이클이 느닷없이 기포가 막 괴어오르는 청량음료를 들이부은 것 같았다.
머릿속이 기포로 부글거리는 것 같았다. 이제 사인 하나면 모든 것은 끝난다던 생각 하나가 갑자기 기포와 뒤엉기는 바람에 방향을 잃어버렸다. 시종일관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던 생각의 방향이었다.
‘마이클!’
날 이렇게 휘둘러 놓고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그의 모습이 지나갔다. 머릿속에서 부글거리던 기포가 한꺼번에 톡톡 터지는 것 같았다.
“마이클, 당신!”
기포가 내 입에서도 소리로 터져 나오고 있었다. 나름 견고하던 내 상상은 찰나에 허물어지고 상상이 빚은 각오도 맥없이 주저앉는 것 같았다.
어이없는 반전이었다.
돌이켜보니 내가 내 감정에 휘둘렸었다. 휘둘리기 전에 먼저 내가 날 다스리고 진정해야 했는데 나는 티티카카 호수의 갈대였다. 내 이성은 마비시키고 감성만 충동질해 분노하게 한 그 분분했던 상상을 억눌렀어야 했는데 나는 오히려 부추기며 그것에 휘둘렸다. 어느 때보다 이성적인 판단이 중요한 때였고 그것을 위해 긴 시간을 두었었고 그것은 두 사람의 남은 인생이 걸린 일이었는데 나는 결국 어깃장으로 장래가 걸린 관계를 해결하려고 한 셈이었다. 그러니까 브라이언이 어머니에게 부린 그 어깃장, 나도 따라해 보고 싶던 그 어깃장을 나는 이 중요한 시점에 마이클에게 마구 퍼부은 셈이었다.
‘잉카의 그 땅에 가고 싶어 한 건 어떻게 알았을까?’
일곱 살에 떠나온 후 한 번도 간 적 없는 그 나라, 내 땅이지만 마이클에게는 드러내기를 꺼려한 내 고향이었고 내 과거였다. 다르다는 이유로 그토록 놀림 받은 그 때를 상기하는 것은 서로 간에 유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머니와 함께 가려고 한 그곳에 그것도 마이클과 함께 라니?
나는 남편, 마이클을 이토록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잊었다 하면서도 다 잊지 못하고 짓궂었던 어렸을 적의 기억에만 여태 함몰되어 아홉 해나 살았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아직도 짐작하지 못한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일까?
전자 티켓을 들고 나는 오만가지 생각에 빠졌다.
이즈음에서 나도 관계에 대한 깊은 오해의 시간을 멈춰야 할 것 같았다.
서로에게 침묵의 긴 시간이 필요했다면 이젠 침묵을 깨뜨려 서로의 생각을 대화로 나누는 시간의 순서일 것 같았다. 그리고 티켓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싶었다.
나는 마이클에게 전화를 했다.
“애나!”
마이클의 목소리에 내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나는 내색하지 않으려 심호흡을 했다.
“보고 싶어, 애나!”
그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를 겨를도 주지 않았다.
“말하지 마, 더 기다리라고. 나 더는 못해!”
그가 떼를 쓰고 어깃장을 부렸다. 귀여운 소년이었다. 되돌아보니 그가 귀여운 소년 같았던 때가 더러 있었다. 그래서 내가 그를 안아주고 이마에다 내 입술을 찍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이 첫 키스를 불렀고 그 순진함에 내 마음이 더 끌렸으니까.
“나도 말 좀 하자, 마이클!”
마치 개구쟁이 아들을 쓰다듬듯 내가 빙긋이 웃었다.
“와, 이제야 내 아내네!”
마이클의 목소리가 비눗방울로 퐁퐁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의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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