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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소설 <엘 콘도르> 연재를 마치고
소설가 김외숙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Oct 25 2021 10:02 AM
미국 땅에 살던 애나는 가끔 전화를 해 아버지와 대화를 나눴다.
“아버지 연세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아프지 마세요, 아버지.”
애나는 전화를 할 때마다 그렇게 말하다가 ‘아버지, 죽지 마세요.’ 하며 늘 울먹이면서 전화를 끊었다.
애나와 통화를 마친 아버지, 제임스 힐스 목사는 말했다, ‘애나는 전화할 때마다 죽지 말라고 하네.’ 라고.
아버지가 연세 많아 죽을까 걱정하던 애나가 몇 년 전에 저 먼저 세상을 떠났다, 심장마비로. 그때 그녀의 나이 예순 초반이었다.
이미 건강을 잃어가던 중이던 아버지 제임스 힐스 목사는 ‘나더러 죽지 말라던 우리 애나가 나 먼저 죽다니..’ 하면서 울었다.
그 애나, 그녀는 내가 늦게 제임스 힐스 목사와 가정을 이루기 훨씬 전 그녀의 나이, 7살에 코스타리카에서 입양되었다. 이미 3남 1녀를 둔 제임스 힐스 목사 가정엔 자녀가 3남 2녀가 된 것이었다.
집안에 입양을 하거나 입양을 간 혈육이 없어 입양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갖거나 할 계기가 거의 없던 내 입장에서 4남매나 두고도 딸을 입양한 제임스 힐스 목사는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늦게 가족이 된 작가인 내게는 여러 자녀를 두고도 또 입양을 한, 그리고 눈에 보이던 아주 따스하고도 인간적이던 가족 간의 관계가 자꾸만 작품의 소재로 보였다. 그러나 막상 작품에 올리는 일엔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소재가 바로 내 가족의 이야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몇 년 전, 아버지가 죽을까 걱정하던 애나가 예순 초반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는 슬픈 소식을 들어야 했던 그때부터 나는 애나를 내 작품에서 다시 살려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떻게 다시 애나를 살려낼까를 오래 머릿속에서 생각하다가 마침내 2019년 11월 중순에 애나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 초고를 시작했으니 바로 장편 소설 <엘 콘도르>의 시작이었다.
작품 속 주인공의 이름을 ‘애나’로 고집한 것과 입양아로 설정한 것은 내가 내 작품 속에서 다시 애나를 살려내고 싶다는 애나에 대한 관심과 내 방식의 추모 방법이었다.
작품 속에서 애나와 힐스 가의 큰아들 브라이언이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사랑을 하고 아픈 이별을 한 것, 그리고 그 외의 모든 이야기는 작가로서의 내 상상의 산물이었다.
작품 창작과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의 시작은 비슷한 시기여서 나는 외부로부터 자연스럽게 고립되어야 했고 고립은 짧은 기간에 장편을 마무리하게 한 좋은 환경으로 작용했다.
애나가 어렸던 나이엔 나도 어렸던 애나가 되었고, 애나가 나이를 더하며 점점 성숙해지자 나도 애나를 따라 성숙하여 사랑에 눈뜨고 이별의 쓰라린 아픔에 시달리기도 하고 그러면서 또 다른 사랑, 마이클과의 사랑엔 정말 사랑의 열병을 앓기도 했었다.
내가 설정한 작품 속의 인물과 예순 후반의 이 나이에 유감없이 사랑을 해 볼 수 있었으니 내 인생에 가장 진하고도 기억에 남을 사랑이었다.
이 작품을 통해 나는 말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어렸던 애나, 페루의 어느 가난한 가정에서 이미 자녀가 있던 캐나다의 가정으로 일곱 살에 입양된 애나의 삶을 통해 나는 먼저 낯선 남의 나라에다 어린뿌리를 내려야 했던 애나의 지난했을 삶과 그것에 반응한 그녀의 심리, 그리고 따뜻한 사랑 속에서 마침내 힐스 가의 가족으로 마음의 뿌리를 내린 그 과정을 말하고 싶었다.
작품 속 어린 시절의 배경인 영원히 죽지 않는 자유로운 새, 콘도르가 있는 잉카의 나라, 페루에서 애나 자신도 결국 자식을 입양하면서 콘도르 정신이란 깊은 뿌리의 의식을 실현한다는 것, 그리고 가정이 파탄의 위기를 만났을 때 어떻게 가정을 다시 지켜내는가 하는 것을 드러내고자 했고, 무엇보다도 ‘아버지, 죽지 마세요.’라며 울먹이더니 저 먼저 떠나버린 애나를
작가인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다시 한번 살려내고 싶은 내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제임스 힐스 목사의 딸로 입양된 애나 힐스는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내 작품<엘 콘도르>에서는 애나 힐스로 성장해 애나 에반스가 되어 행복하게 살고 있다.
초고 시작부터 수많은 교정의 과정을 거쳐 오케이 사인과 함께 작품을 출판사에 넘기기까지의 두 해 동안, 나는 애나가 되어 울기도 웃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마음껏 사랑했다.
코로나로 의도하지 않게 나만의 섬에 갇혀 작품을 쓴 시간이었지만 갇혀 마음껏 쓰면서 쓰는 희열을 느꼈고, 원 없이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했다.
이제 <엘 콘도르>를 위해, 독자를 위해 연재의 공간을 기꺼이 내어주신 한국일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나는 작품으로, 한국일보에서는 연재의 공간 제공으로 함께 한 인연의 세월이 돌이켜보니 열여덟 해인데 그 전의 장편 소설, <유쾌한 결혼식>을 연재 시작으로 장편 소설<그 바람의 행적>, 장편 소설 <그 집, 너싱홈>에 이어 <엘 콘도르>는 4번째의 장편 연재이다.
과분한 사랑을 베풀어주신 한국일보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무엇보다도 졸작을 기다려 읽어주신 나의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할 수만 있다면 때마다 작품마다 기다려 읽어주신 내 독자님들께 따뜻한 커피라도 대접하고 싶은데 마음뿐이다.
이제 한국일보 웹사이트에서의 연재는 마무리되고
장편 소설 <엘 콘도르>는 11월 초 경에 책으로 모양을 바꿔 여러분을 뵈려고 합니다.
한국일보, 감사합니다.
독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저자 김외숙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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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