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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이상의 존재, 아버지!
권천학 시인·한국시조진흥회부이사장
-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
- May 12 2023 09:47 AM
영국의 문화협회가 몇 해 전에 ‘가장 아름다운 영어단어’를 설문조사한 일이 있었다. 102개 비영어권 국가의 4만 명을 대상으로 했다.
그때 첫 번째로 뽑힌 단어가 mother(어머니)였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어땠을까?
passion(열정), smile(미소) love(사랑) eternity(영원)이 뒤를 이었다. 78번째까지 발표되었으나 father(아버지)는 그 순위 안에는 없었다. 아마도 100번째의 순위에도 있었을지 없었을지 언급이 전혀 없었다. 언급이 없다는 것은 나타나지 않았다는 뜻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비록 ‘아름다운 단어’로 뽑히지는 않았어도, 아버지의 존재는 분명 우리 곁에 있다. 아니 우리의 삶을 관통하고 있다.
아버지 등골은 산맥이다!
들어갈수록 깊어지고, 들어갈수록 우뚝해지는 산맥이다
그 산맥 오르내리며 살고 또 살았다
살고 또 살며 우뚝우뚝, 넘어진 자리마다 세워놓은 돌 표지석
움푹진푹 피해가며 걷던 벼랑길, 아슬아슬 줄 타던 아버지의 그 산맥에서
아버지의 등골은 깊은 강이다!
흐르고 또 흐르면서 낮은 곳 후미진 곳 쓸어내며 씻어내는 장강(長江)이다
그 강물에서 놀고먹고 살 올리며 헤엄치는 물고기로 꿈꾸던 바다
구비구비 견디며 출렁이며 바다로 가는 길을 트던 아버지의 그 강에서
아버지의 산줄기에서 배운 산 타는 법으로 등성이에 오르고
아버지의 강줄기에서 배운 헤엄으로 출렁이는 세상을 건넌다
구비구비 아버지의 길로 첩첩세상을 건너간다
출렁출렁 아버지의 길로 세상파도를 건너간다
-‘아버지의 등골’
언제부턴가 ‘간 큰 남자’라는 말이 유행했다. 그 말에서 아버지의 위력이 낮아졌음도 자연스럽게 유추할 수 있다. 남자의 위상이 약화되었음과 동시에 아버지의 위세가 약화되었음도 포함된다. 사회활동의 주력이 남자다. 가정에서의 주동도 아버지다. 과거에 비해서 약화되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가정이든 사회에서든 한 역할을 한다. 굳이 상하를 가려서가 아니라 중요한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다.
남자와 아버지는 분명 다르다. 마치 여자와 어머니가 다른 것과 같다.
어머니가 새끼를 가진 존재라면 아버지 새끼를 만든 존재다.
모성애로만 이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삶이 모성애로만 채우지는 것도 아니다. 든든한 지주(支柱)가 돼주는 것은 오히려 부성애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어려서 한국에 살 때는 ‘어머니날’만 있었다. 그러다가 ‘어버이날’로 바뀌었다.
1956년부터 시작한 ‘어머니날’은 어린 마음에 어머니의 존재만을 심어줬다. 왜 아버지의 날은 없느냐는 투정어린 말들도 있긴 했지만 그냥그냥 지나쳤다. 그러다가 1973이 되어서 ‘어버이날’이 지정되었다.
캐나다에선 아버지날이 따로 있다. 공식적으로 정해진 것이 6월의 셋째일요일이다. 매년 날짜가 바뀔 수 있다. 올해는 6월18일이다.
한국이든 캐나다이든 ‘어머니날’을 요란하게 보내는 것에 비하면 ‘어버이날’은 조용한 편이다. ‘어버이날’이란 말은 아버지를 포함한 어른, 노인을 모두 섬기게 하는 날이다. 딱히 아버지만을 기리는 것이 아닌 탓이어선지, 두루뭉술하게 보내게 되는 편이다. 아버지에 대한 대우가 좀 옅은 것 같아서 아버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날을 정해놓고 기리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형식에 메여 행사처럼 지나치는 일은 간이 작아진 아버지들에겐 오히려 더 허무함을 안겨줄지도 모른다. 아버지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스스로가 아버지에 대한 우러나는 사랑이나 존경심보다는 지나가는 행사로 치르고 마는 일로 희석될지도 모른다. 그 탓인지 가끔씩 소외된 아버지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우리 모두가 건성이 되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백세장수시대가 되면서 아버지일 수 있는 시간은 더욱 길어졌는데, 행사처럼 치른 것으로 더 소홀해지지는 않을까하는 노파심도 인다. 아버지를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새겨봐야 하겠다. 당일의 행사보다는 그로 인하여 아버지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영어 단어’에 뽑히지 않은 것은 어쩌면 아버지의 사랑은 그런 범위를 훨씬 벗어나있는 우주적인 큰 사랑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뭐래도 아버지는 존재 이상의 존재이다.
권천학
시인·한국시조진흥회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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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