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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엘 콘도르( El Co'ndor)' - (3)
김외숙 소설가
-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
- Aug 20 2021 02:35 PM
브라이언과 하나로 묶여버리고 싶은 오래 묵은 감정은 숨긴 채 한 내 말에 브라이언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니, 하는 눈을 하고 날 바라보던 브라이언의 그 표정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러나 그럴수록 나는 더 냉정하고 단호해야 했다. 브라이언의 언사는 어머니 앞에서 소리로 드러난 순간 너무나 억지스럽고 무례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이미 약속되어 그렇게 살고 있던 관계를 뿌리부터 부정하고 뒤집는 말의 테러였기 때문이다.
이러지 않고는 어머니를 안심하시게 할, 브라이언의 감정을 누르고 무엇보다도 브라이언과 다르지 않은 내 속의 간절함을 단념할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와 브라이언 사이에 오래, 그리고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던 그 감정과는 상반된, 냉정한 현실이었다.
‘이게 우리의 한계야, 브라이언.’
브라이언이 말을 못하고 나를 바라보고만 있을 때, 그래서 나는 울고 싶었다. 어머니가 오히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브라이언과 날 번갈아 바라보고 계셨다.
그리고 몇 달 후 브라이언은 큰 가방을 앞세우고 집을 나섰다. 이름도 낯선 코리아로 간다고 했다. ‘넌 내 동생이야, 브라이언.’이란 바로 그 말 때문이었을 것이다.
잡을 수도 따라나설 수도 없던 나는 멀거니 바라보기만 해야 했다. 저 가방을 앞세우고 다시 돌아올 때까지 나는, 살아있을 것 같지 않았다. 부모님 마음도 다르지 않았으리라. 이미, 자식 잃은 기억을 묻어둔 가슴이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부모님 부탁해, 애나.”
용의주도한 브라이언은 행여 나마저 떠나 버릴까봐 날 집에다 묶어 버렸다.
그렇게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나는 오래 걸리지 않고 돌아올 그 날이 언제인지도 모른 채 매일 시름시름 가슴 앓으며 마냥 기다려야 했다.
2. 잔잔한 흥분
브라이언이 집에 돌아온다는 소식은 집안을 잔잔한 흥분으로 들뜨게 했다. 마치 봄바람이 놀다 간 호수면 같았다. 아버지는 사람을 시켜 브라이언의 방을 고치셨고 브라이언이 집에 오는 일에 나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듯 어머니는 ‘애나야’ 하며 종종걸음으로 집안을 오가셨다. 어머니의 목소리에 크리스털 방울이 달린 것 같았다.
“애나야, 애들 방, 네가 꾸며줄 수 있지?”
급기야 어머니가 그 방울소리로 신방 꾸미는 일을 맡기셨을 때 나는 ‘어머니!’ 하고 비어져 나올 것만 같던 외마디부터 단속해야 했다. 실은 어머니의 말은 그 누구도 거절할 수 없도록 충분히 부드러웠다.
브라이언 내외가 지낼 신방을 구태여 내게 맡기는 어머니의 속마음은 내 손으로 신방을 꾸미면서 행여 접지 못한 마음 한 자락이라도 남았다면 흔적조차 남지 않도록 정리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어쩌면 아닐지도 모른다. 속에 든 산란한 심정에 휘둘리지 말고 누나로서의 위치를 견고히 하라는 배려였을 수도 있다.
어머니의 부드러운 부탁 속에 든 모호한 저의에 내 가슴 갈피에 숨어있던, 기다림에 시달릴 대로 시달린 마음 한 자락이 밑둥치 채 잘려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침대와 화장대를 들이고 새 커튼을 달아야 했고 어머니와 함께 만든 침대 커버로 마무리를 해야 했다.
새 침대에다 퀼트 커버를 덮는 것으로 신방정리를 마무리하며 물끄러미 침대 커버를 내려다보았다. 아직 브라이언과 내가 대학생이던 그 때 언젠가 장가들면 줄 거라면서 어머니가 시작하셨고 내가 동참한 작품이었다.
그 때, 브라이언의 신혼 잠자리를 위한 일에 내가 손을 보태고 있었을 때 어머니는 안심하셨을 것이다. 자라면서 절로 생긴 그 감정은 내가 누나로서 동생의 신혼 잠자리를 만드는 일에 짬짬이 동참하면서 절로 해결되었다고 여기셨을 것이다.
그러나 자로 잰 천 조각을 자르고 천과 천을 기하학적 무늬로 이으며 나는 생각했다, ‘브라이언과 덮고 싶다.’ 고. 브라이언과 자고 브라이언과 일어나고 브라이언 아기를 낳고 브라이언과 브라이언과...
그것은 너무나 은밀하고 과한 욕망이어서 나는 의도적으로 내가 아는 다른 기하학적 문양, 아득한 내 나라 페루의 나즈카 평원에 있는 그림을 떠올리기도 했다. 페루 남부 해안 지대에 위치한 나즈카 평원의 신비로운 그림들이었다.
아버지도 오빠도 식구 그 누구도 가 본 적은 없지만 간 적 없어 본 적은 없어도 선조가 남겼을 그림의 존재를 모른다면 페루 사람이 아니었다. 페루의 아버지는 그 문양 중의 하나가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란 이름의 불멸의 새, 콘도르가 분명하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어머니와 내가 작은 천 조각을 이어 만든 문양은 새가 아니라 큰 꽃이었다. 브라이언의 신방 이불 위에 핀 꽃.
내가 꽃이고 싶던 때였다. 그 꽃이 되어 브라이언 곁에 잠드는 상상에 빠져들다가 실수를 가장하며 바늘로 손끝을 찔러 날 다스렸던 때였다.
첫 만남의 그 때부터 브라이언이었고 한 번도 브라이언 아닌 사람을 삶속에다 둔 적이 없어서였을까, 내가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듯 브라이언의 신방 치장에 개입하도록 한 어머니를 이해는 하면서도 잔인해서 아팠다. 어쩌면 딸의 심정을 너무나 잘 아신 어머니여서 한 번 더 단속하는 의미로 모질다 싶은 부탁을 하셨는지도 몰랐다, 바로 신방 꾸미는 그 일이었다.
이제 내일이면 코리아로 떠난 브라이언이 삼년 만에 집으로 온다, 아내와 함께. 어머니 속의 불안도 브라이언이 아내와 함께 어머니 앞에 나타나는 그 순간부터 없던 것이듯 절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어머니가 눈앞의 자식내외로 인해 안심하고 오래된 관계는 그렇게 아무 일 없듯 이어질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오래 전 어른들끼리의 약속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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