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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슬의 어머니는 산파였다.
황현수의 들은 풍월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Sep 12 2024 06:15 AM
고국의 어머니들은 어디서 언제 배우셨는지, 아기들을 재울 때 자장가를 불러 주었다. 그런 자장가 중에 ‘타박네’라는 노래가 있다.
타복타복 타복네야 네 어디에 울며 가노/ 내 어머니 몸 둔 곳에 젖 먹으러 울고 간다/ 산 높아서 못 간단다 물 깊어서 못 간단다/ 산 높으면 기어가고 물 깊으면 헤엄쳐 가지/ 범 무서워 못 간단다 귀신 있어 못 간단다/ 범 있으면 숨어 가고 귀신 오면 빌며 가지
이 노래는 1970년대 초에 가수 서유석이 불러 유명해졌지만, 그 이전에 포크 가수 양병집이 발굴해 처음 불렀다. 그 뒤에 한대수, 김민기, 양희은 등이 부른 ‘타복네’는 원래 함경도에서 구전돼 온 민요였다. 원래 표기는 ‘타박네’로 문학평론가 이어령은 그의 책에서 ‘타박타박 걷는 아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제목이라고 주장한다.
김민기의 어머니는 숙명여고, 연희전문을 나온 인텔리 여성이었다. 아버지 없이 산파를 하며 10남매를 키운다. 나무위키
나는 이 ‘타복네’를 1970년대 초에 청파동 사촌형의 집에서 처음 들었다. 운 좋게도 그 유명한 김민기의 목소리로 말이다. 나의 사촌형이 서울대에서 <쌍뚜스>라는 기타 동아리를 했는데 당시 후배였던 김민기를 집으로 초대해 작은 콘서트를 열었다. 그때 김민기의 수줍고 가라앉은 그늘이 낀 ‘타복네’를 들었는데 당시에는 김민기가 직접 작곡한 노래로 알았다. 시를 이야기하듯 텁텁하게 읽어내는 그의 모습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것이 구전 가요였다.
김민기는 1951년에 전북 이리에서 10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인민군에 학살당해 돌아가시고 과부가 된 어머니가 유복자인 민기를 낳았다. 함경도 원산이 고향인 어머니는 숙명여고를 나오고 연희전문 1기로 입학한 인텔리 여성이었다. 연희전문 시절, 조선학생에 대한 차별에 항의하며 들고일어났다가 퇴학당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조산원 산파 자격증을 따서 돌아와, 남부 지방의 여러 곳을 다니며 진료 활동을 한다. 그러다가 이리의 한 병원에서 김민기의 부친을 만나 결혼하여 10남매를 낳는다. 남편이 죽은 뒤, 아이 받는 일을 하며 10남매를 키웠는데 아버지 없이 자란 김민기는 활동적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는다.
김민기는 “내가 제일 무서운 게 문둥이하고 팔다리 잘린 상이군인들이었다. 그런데 방학이면 서울에 있는 형, 누나들이 온다고 해서 역에 마중 나가는데, 역에서 그 무시무시한 문둥이들이 우릴 보고 막 다가오는 거야. 굉장히 무서웠다. 근데 그 놈들이 어머니한테 인사를 굽실하고… 알고 보니 어머니가 일정 때부터 받아준 놈들이야. 어머니가 그 사람들한테 돈을 받았겠어? 내 말은 세상에 돈 되는 일만 다가 아니다 이거지. 그 전쟁통에 그 아이들 안 받으면 어떻게 할 거야? 돈이 안 돼도 사람이 해야 되는 일은 해야 된다. 내가 아동극을 하려는 것도 같은 이유야”라고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말한다.
김민기는 자신의 음악을 통해 사람들에게 용기와 소망을 전달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학전어게인 프로젝트 제공
서울로 올라온 그는 서울 재동국민학교를 졸업하고 경기중학을 거쳐 경기고에 입학한다. 경기 중·고 시절 미술반 활동은 그의 ‘청소년기의 모든 것’이었다. 공부는 뒷전이었다. 그가 음악을 하게 된 것은 서울음대 피아노과를 다니고 있던 셋째 누나의 영향이다. 누나의 피아노 소리를 듣다가 잠이 들곤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누나의 연주에서 틀린 대목을 꼬집어 내는 훌륭한 귀를 가지게 된다. 고3 때 누나로부터 기타를 선물 받고 독학한다.
서울대 미대 회화과 들어가서 <도비뚜>라는 동아리 활동을 하는데, 1972년 문리대 신입생 환영회에서 민중 노래를 가르치다가 정보부에 끌려가며 민주화 운동에 발을 들인다. YWCA 포크 동아리 <청개구리>에서 노래 부르다가 양희은을 만나 ‘아침이슬’을 준다.
그의 음악 속에 전통 음악의 향기와 아름다움이 담겨 있는 것은 국악 작곡가 이종구와 김영동에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침 이슬’이나 ‘상록수’ 등의 그의 노래를 자세히 들어 보면 현대적이면서도 전통적인 감성을 담고 있다.
대중들은 1975년에 금지곡이 된 그의 명곡, ‘아침 이슬’이 “태양이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른다”는 가사 때문으로 알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김민기는 “어느 날 술을 마시고 공동묘지 근처에서 자다가 아침에 햇빛을 받으면서 깨어났을 때의 경험을 그저 가사로 옮겼다”고 인터뷰에서 밝힌다.
김민기는 음악뿐만 아니라 사회 문제와 인간애를 중시했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통해 사람들에게 용기와 소망을 전달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의 삶과 음악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김민기는 2024년 7월, 73세의 나이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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