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박면순(노스욕)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Sep 28 2022 03:18 PM
작년 이맘때쯤 능소화에 대한 산문을 써서 신문사에 기고했는데 꽃 자체의 아름다움보다 능소화의 별칭인 양반꽃에 대한 이미지를 부각시켜 당시 한국정치의 세태를 비꼬며 횡설수설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인데 지금도 Lissom park 주변에 도란도란 피어 있는 이들을 볼 때마다 미안함이 그지없다. 오늘은 또 하나의 최애(最愛)꽃인 무궁화에 대해 쓸 참인데, 꽃 자체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배경 때문에 또 한번 곁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얼마 전 토론토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P형과 점심을 같이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화제가 무궁화로 넘어갔는데 요즈음 한국보다 더 많은 무궁화가 곳곳에 피어 있는 토론토에서 교민이라면 낯설지 않은 화제일 것이다. P형의 무궁화에 대한 생각은 한국에서 마주치는 많은 노틀과 다름없이 ‘더럽고 진딧물이나 끼는 천덕꾸러기 꽃’이었다. 한발 더 나아가 한국은 왜 아직도 이런 꽃을 국화로 삼고 있는지 참으로 한심하다는 투였고, 평소 인문학에 대해서 거침이 없던 P 형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라 적지 않게 당황스러웠다. 기막히고 슬픈 일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무궁화는 아름답고 고결한 꽃이다. 꽃말도 영원함, 아름다움, 순수함이다. 중국에서는 무궁화를 군자의 기상을 지닌 꽃이라 하고, '아침에 꽃이 피고 저녁에 꽃이 지는 훈화'로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지조가 있는 꽃으로 예찬했다(원전, 세종의 소리 중 최민호 칼럼 www.sjsori.com). 무궁화의 서양명은 Rose of Sharon이다. 성경에 나오는 “샤론의 꽃, 예수”의 바로 그 꽃이다. 원전에서는 아래처럼 예수님을 대놓고 무궁화로 비유하지만 찬송가 89장은 아래처럼 단순 의역이 되어 많이 아쉽다.
Jesus, Rose of Sharon, bloom within my heart; 샤론의 꽃 예수 나의 마음에 거룩하고 아름답게 피소서
Beauties of Thy truth and holiness impart,
That where’er I go my life may shed abroad 내 생명이 참 사랑의 향기로 간 데마다 풍겨나게 하소서
Fragrance of the knowledge of the love of God.
꽃이 크면서도 색은 은은하며 기품이 있고, 아침에 피고 저녁에는 꽃잎을 닫고 다시 다음날 아침을 기약하면서 7월부터 10월까지 무려 100여일을 피어 있는 말그대로 ‘끝없이(無窮)’ 피어나는 꽃. 삼천리 방방곡곡에 흐드러지게 피는 꽃이니 화초는 물론이요 식용으로도, 민간약재로도 널리 사용되었던 점(동의보감, 향약집성방에 기술되어 있음)을 미루어 무궁화가 우리 민족의 일상에 깃든 것은 태고의 일일 것인데, 최초로 문헌에 나타나는 것은 신라 때 최치원이 당나라에 보내는 문서에 우리나라를 근화향(槿花鄕, 무궁화의 나라)이라고 칭한 것이라고 한다(원전, 행정안전부/국가상징/국화(무궁화)). 전통적으로 귀하게 여기던 꽃이고 고대에는 신성시하던 식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신단 주위에 심었다고 한다.
그런데 무궁화는 언제부터 왜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겨났을까? 이는 단적으로 일제 때이다. 일제가 민족정기를 말살한다고 턱도 없는 짓을 수도 없이 했음을 잘 알고 있거니와 하물며 우리민족의 꽃을 온전히 놔두었을 리가 없다. 일제는 무궁화에 진딧물이나 벌레가 많이 끼고 피부에 닿으면 피부병이 생기며 꽃이 핏자국을 품고 있어 불길하다는 둥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웠고 국민학교 학생들조차 세뇌시켜 뿌리 채 뽑아 오도록 해서 모아서 불태웠다. 더불어 이 더러운 꽃을 숭상하는 우리민족도 더러운 민족으로 폄훼하면서...
P형이 알고 있는 것처럼 무궁화는 무엇보다 진딧물이 많이 낀다고 하는데 캐나다 우리집 앞마당에 있는 무궁화에는 벌이며 풍뎅이 등이 가끔씩 보이긴 하지만 진딧물은 구경하기 힘들다. 왜 유독 한국사람만 무궁화하면 진딧물부터 떠올릴까? 이는 일제가 집주변이나 산야에 있는 멀쩡한 것들은 모두 도륙을 하여 더러운 뒷간, 외양간, 두엄 등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주로 남게 되었는데 꽃술이 유난히 달달하니 그 주변에 있는 진딧물이나 파리떼가 들끓었음은 뻔한 이치이고, 이는 세월이 지날수록 그런 무궁화를 많이 보게 되니 일제의 말을 사실처럼 믿게 되었을 것이다. 나도 어렸을 때 어른들로부터 수없이 들었던 얘기이다.
어찌 우리는 무궁화에 대한 일제의 잔재를 지우는 교육은 제대로 하지 않았을까?
무궁화로 나라의 문장, 대통령 휘장, 국회의원 배지, 경찰·군인의 계급장, 일원짜리 동전에 무궁화 대훈장까지 만든 지금까지도…
요즘 무궁화는 hot하다.
최근 Netflix 영화 ‘오징어 게임’으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면서다. 세계 각지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놀이(서양 게임명은 Grandma’s Footsteps, Red Light/Green Light이다)가 유행하고, 어른들도 어린시절의 이 게임을 다시 즐긴다. 그들의 말보다도 한국말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고 하며 즐기는 지구인도 많다. 쇼핑몰이나 광장에는 이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영희 인형’이 많이 세워져 있다. 얼마나 뿌듯한 일인가? 이들 어디에 무궁화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있는가?
캐나다에는 어디를 가나 정말 무궁화가 많다. 우리 집 울에도 무궁화가 한창이다. 이민 와서 둘째 아들의 성년일에 집 앞에 무궁화 한 그루를 심도록 했다. 큰 병을 치른 녀석인지라 ‘무궁한 생명력’이 의미가 컸다. 속마음을 모르는 녀석이 ‘형한테는 안 시키더니 왜 자기만 괴롭히냐?’며 툴툴거려서 그 불평도 같이 심었다. 하지만 어린 나무가 뿌리를 제대로 내리기도 전에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이삿날이 하필 크리스마스 녘인지라 어쩔 수 없이 그 무궁화를 화분에 옮겨 담았다. 이번에는 아내가 ‘바빠 죽겠는데 나무까지 캐 가느냐?’며 푸념을 해서 그 푸념도 심었다. 땅이 이미 얼어 있어서 새집에서는 Garage에 넣어 둘 수밖에 없었다.
이듬해 봄에 춥고 캄캄한 Garage에서 물도 제대로 못 먹어 막대기처럼 마른 무궁화를 긴가민가하며 뜰에 내다 심었다. 몇번의 봄비가 손님처럼 찾아오고 봄 볕이 따갑다 느껴질 때까지 마른 가지에 생명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주변의 초목이 키자랑을 한창 하는 어느 날 이젠 마른 나무를 잘라 버려야겠다 싶어 가지를 비트는 순간 딱하고 꺾이지 않아 흠칫하여 보니 깨알 만한 싹이 껍질 속에 움터 오르고 있었다. 세상에! 절로 엉덩방아가 찧어졌다. 그런 후 마치 산 넘어온 소가 헐떡이며 물을 들이켜듯 빠르고 힘차게 자랐다. 꽃도 피고 그늘도 만들고 벌도 풍뎅이도 모아 들이며 군계일학으로 잘 자랐다.
모진 고초를 받았으되 굴하지 않고 버텨내며 오히려 주변을 압도하는 생명력. 어찌 오천년 역사를 외세로부터 지켜 온 우리민족을 닮은 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으랴! 분명 일제시대 이전에는 여기 캐나다보다 더 많은 무궁화가 한국 땅에서 피고 졌을 것이다. 말그대로 무궁화 삼천리였을 테니!
가을의 문턱에 서서 P형의 말을 곱씹으며 다시 한번 무궁화 꽃의 의미를 생각하며, 무궁화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무궁무진하게 활짝 피는 대한민국을 그려 본다.
박면순(노스욕)
www.koreatimes.net/오피니언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