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수의 인문학 한담 추억이 깃든 황혼

노인은 추억 속에 산다라는 말에는 어딘가 모르게 쓸쓸한 기운이 서려 있다. 마치 노년이 현재를 외면한 채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에만 매달리는 삶으로 폄훼하는 듯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의미가 드러난다. 그것은 폄훼가 아니라,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한 사람이 축적해 온 경험의 깊이와 삶의 풍요로움을 인정하는 말이다.바쁜 직장 생활을 마치고 은퇴하면 하루의 리듬은 눈에 띄게 달라진다. 매시간을 채우던 업무와 책임은 사라지고, 시간은 느슨하게 흐른다. 이렇게 새로 생겨난 시간의 여백 속에서 ...

이현수의 인문학 한담 사랑받는 고전 “폭풍의 언덕”

2026년 2월23일에 게재된 필자의 글에서 최근에 개봉된 영화 폭풍의 언덕에 대한 엇갈린 평가가 상세히 소개되었다. 이 상반된 시선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원작 소설의 줄거리와 서사 구조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원작에 대한 이해 없이 영화만을 두고 내리는 평가는 자칫 피상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은 영국 욕셔 지방의 거친 황야 언덕 위에 세워진, 언셔가(家) 소유의 외딴 농가의 명칭이다. 이 집 주인의 딸인 캐서린은 아버지가 거리에서 데려온 고아 소년 히스클리프와 어린 ...

이현수의 인문학 한담 영화 “폭풍의 언덕”에 대한 엇갈린 평가

1847년에 발표된 에밀리 브론티의 소설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은 한때 거칠고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 내면을 깊이 탐구한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작품이 사랑받는 고전이 된 이유는 무엇보다 인간 감정의 극단을 진솔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두 주인공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은 낭만적이면서도 파괴적이다. 브론티는 사랑을 이상화하지 않고, 그 안에 깃든 집착과 질투, 복수심까지 함께 보여 준다. 이러한 강렬하고 복합적인 감정은 시대를 넘어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소설 폭풍의 언덕...

이현수의 인문학 한담 블록을 통한 자기표현과 소통

바쁜 직장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나는 소일거리를 찾다가 블록(blog)을 개설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온라인 블록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주제로 쓴 글을 독자들과 나누는 활동, 즉 블로깅(blogging)을 시작한 것이다. 오랜 연륜을 쌓아 온 사람으로서,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해 온 것들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그 출발점이었다.언스플래쉬블로깅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매력에 깊이 빠져들었다. 글을 쓰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을 뿐 아니라, 내 글을 읽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소통과 공감의 분위기는 예상보...

이현수의 인문학 한담 이중 언어 구사의 장점

현대 사회에서 모국어와 더불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모국어 하나만 구사하는 사람보다 더 유리한 입장에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 두 언어, 즉 이중 언어 구사의 장점을 살펴보자.이중 언어 구사는 단순한 의사소통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두뇌 능력을 향상시킨다. 이중 언어 구사자는 모국어로 말하거나 글을 쓸 때는 모국어로 생각하고, 외국어로 말하거나 글을 쓸 때는 외국어로 생각해야 하는데, 필요에 따라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전환하는 과정은 두뇌가 집중하고 유연하게 사고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한 연구에 따르...

이현수의 인문학 한담 동방박사의 선물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생각나는 단편 소설이 있다. 오 헨리(O. Henry)의 동방박사의 선물(The Gift of the Magi)이 그것이다. 1905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20세기 초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데, 소설의 주인공 델라(Della)와 제임스(James)는 가난한 젊은 부부이다. 제임스의 박봉으로 근근이 살아 가는 그들이 애지중지하는 보물이 둘 있다. 델라의 긴 갈색 머리카락과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그리고 아버지가 제임스에게 물려준 금시계가 그들의 보물이다.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자 델라는 남편 제임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이현수의 인문학 한담 명작을 다시 읽는 감회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별로 할 일이 없는 나는 독서로 소일한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지만 그 중에서도 문학 작품을 애독한다. 그런데 신작을 읽는 것 보다 오래전에 읽었던 작품들을 다시 읽는 즐거움이 더 크다. 내가 다시 읽는 작품들은 보편적 관심사를 주제로 하여 표현이 원숙하고 탁월한 예술적 가치가 있는 명작들이다.언스플래쉬예전에 위대한 문학 작품들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스토리의 전개에만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그 안에 깃든 문학적 깊이를 다 헤아리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 같다. 그러나 연륜이 쌓인 지금 다시 읽으니 예전에는 대...

이현수의 인문학 한담 하늘과 맞닿은 고갯길을 걷다

한국에 체류하던 아내와 나는 친구 부부와 함께 늦가을에 당일치기 문경새재 여행을 다녀왔다.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이 스쳐 지나갔을 그 유명한 고갯길을 우리가 밟아 본 것이다.문경새재. 한국관광공사 사진우리가 판교역에서 탑승한 KTX열차는 한 시간 반을 달려 연풍역에 닿았다. 창밖 풍경은 이미 가을빛으로 완숙했다. 들판의 벼는 고개를 숙였고, 멀리 겹겹이 포개진 산들은 옅은 안개 속에서 수묵화처럼 번져 있었다. 연풍역을 나서자 신선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새도 날아서 넘기 힘들다는 문경새재는 경상북도 문경시...

이현수의 인문학 한담 인공지능 시대에 중요한 인문학

오늘날 우리는 과학과 기술의 눈부신 발전을 실감하며 살아간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이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며, 생성형 인공지능 (Generative AI)은 개인의 행동 데이터를 바탕으로 취향을 예측하고 심지어 사고의 패턴을 추론하려고 시도한다. 기계가 점점 더 지능적이고 효율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이제는 문학, 역사, 철학과 같은 인문학을 실용성이 떨어지는 학문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데이터, 알고리즘, 자동화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진정한 가치는 오직 과...

이현수의 인문학 한담 문학의 한 장르인 수필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을 의미하는 수필(隨筆)이란 용어는 중국 송나라에서 처음 쓰였고, 수필이라는 개념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조선 초기라고 한다. 다만 조선 시대의 문인들이 쓴 글은 수필이라는 명칭보다 잡기(雜記), 필기(筆記), 기문(記文) 등으로 불렸는데 실질적으로는 일상의 소감, 견문, 역사, 인물 이야기 등 자유로운 형식이 많았는데 오늘날 우리가 수필이라고 부르는 글들이다.언스플래쉬수필은 글쓴이의 생각, 느낌, 체험을 자유롭게 기술하는 산문 형식의 글이다. 소설이나 시처럼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논문처럼 객관적 논리...

이현수의 인문학 한담 ‘이방인’이 난해한 소설?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은 워낙 유명한 소설이라 널리 읽히지만 이해가 잘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독자가 많이 있다. 왜 그럴까?1942년에 초판이 발간된 이방인은 일인칭 소설로서 주인공 뫼르소(Meursault)가 화자(話者)이다. 그는 알제리에 살고 있는 평범한 회사원인데 매사에 무관심하다. 어머니가 사망하자 그녀가 살고 있던 양로원에서 거행된 장례식에 참석해서 부모를 여읜 다른 사람들처럼 슬퍼하지도 않고 관 속에 누워있는 어머니의 시신 보기를 거부하는 등 상주의 신분에 걸맞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 장례식 후에는 어머니의 묘소에 참배도 ...

이현수의 인문학 한담 로마 문자의 기원과 진화

영어는 영어권 국가들의 언어이지만 현재 사실상 세계적 공통어(lingua franca)가 되어 널리 쓰이고 있다. 영어의 표기 수단인 로마 문자(Roman alphabet)를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쓰고 있는데 로마 문자는 어떻게 생겨나서 진화하였나?한글은 15세기에 명확한 목적과 철학을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창제되었는데 이는 인류 언어 역사에서 유례없는 일이다. 한글과 달리 세계의 모든 문자는 자연스럽게 생겨나서 오랜 세월에 걸쳐 진화하면서 형성되었다.오늘날 영어를 비롯한 많은 언어에서 사용하는 로마 문자 역시 수천 년에 걸쳐 만들...

이현수의 인문학 한담 르네상스의 발상지 피렌체 탐방기

르네상스(Renaissance) 거장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적과 그들이 남긴 작품들을 현장에서 직접 보기 위해 나는 아내와 함께 르네상스의 발상지 피렌체(Firenze, 영어로는 Florence)를 방문했다.르네상스는 재발견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 과학, 문학, 예술을 기반으로 14세기부터 17세기까지 유럽에서 이루어진 문예 부흥이다. 르네상스는 현대 서양 문명의 기틀을 다지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피렌체 사진. 언스플래쉬인문주의(휴머니즘): 인간의 이성, 자유, 존엄성을 강조하며 인간이 스스로의 능력...

이현수의 인문학 한담 독서 예찬

책은 인류가 축적한 지식의 보고인 동시에 세대 간 지혜를 전수하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책은 인간의 사고의 폭과 깊이를 확장하고,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문명을 발전시키는 필수적인 도구이다. 우리는 책을 통해 과거의 지혜를 배우고, 현재를 이해하며,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책 읽기, 즉 독서는 우리의 지능적 성장을 촉진시키고, 감성을 풍부하게 하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창의적인 활동이다. 구체적으로 독서의 혜택은 무엇인가?독서는 지식을 쌓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우리는 책을 통해서 역사, 철학, 과학, 문학, 예술 등 다양한 ...

이현수의 인문학 한담 소셜 미디어를 통한 사회 참여

은퇴는 양날의 검과 같다. 나는 직장 생활을 마침과 동시에 온전한 자유인이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오랜 세월 국제 금융업에 종사하며 구축한 폭넓은 인맥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나는 은퇴 후 사회적 고립이 불러온 소외감 속에서 보람된 소일거리를 찾으려고 고심했다. 그러다가 소셜 미디어가 자기 표현과 사회 참여를 위한 강력한 플랫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여러 주제에 관한 글을 써서 페이스북과 블록 그리고 다양한 온라인 공간에 올려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시작했다.디지털 세계는 지리적 장벽을 허물어 준다. 소셜 미디어에 올린 글을 통해 ...